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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부인사 국가 사적 승격 과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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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남효주
hyoju3333@tbc.co.kr
2024년 07월 26일

[앵커]
고려 초조대장경을 품었던 팔공산 부인사는
그동안 발굴 조사와 복원 작업이 미진해 국가 사적이 못 되고 여전히 대구시 기념물에 머물고 있는데요.

부인사에 초조대장경이 봉안됐음을 입증하는 '명문 기와' 발굴을 토대로 앞으로 과제는 무엇인지 현장에서 직접 명문 기와를 검증한 최태선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Q1>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알아도 부인사와 초조대장경은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를 지니는 문화유산인지, 또 이번에 발견된 명문기와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시청자들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1> (불교 국가였던 고려는) 거란을 방어하기 위해서 고려 개성에서 초조대장경판을 조성을 했고, 그것을 활용해서 대장경을 인경을 하고 했던 것이 마지막에 팔공산 부인사에 경판이 내려와서 봉안이 되었던 것을 초조대장경판이라고 하고, (지금까지는) 부적 부(符)가 있는 명문 기와를 그동안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인사가) 유적으로서의 가치는 어느 정도 입증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초조대장경 봉안처를) 확정 못한 상태였다가 이번에 부적 부(符), 어질 인(仁)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됨으로 해서 대장경판을 봉안했던 부적 부(符) 어질 인(仁), 절 사(寺) 자가 팔공산 현재의 부인사라는 것이 확정이 된 것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Q2> 오랫동안 벌어진 논란이 이번에 종식됐지만 아직도 부인사에 대해서 밝혀진 게 많지 않습니다.
부인사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A2> 불전과 관련되는 중심 권역과 경판을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중심 권역 두 개가 있는데 이 두 개의 어느 곳도 완전하게 규모를 고고학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가 사적이 되는 것은 그러했던 것에 어느 한 쪽이라도 완전하게 좀 완전체가 드러남으로 인해서 국가 사적을 가는 데도 좀 쉽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제 결국은 사유지가 많은 공간에 대한 대구시 기념물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시 행정으로 풀어낼 거냐 이게 아마 국가유산청하고 협업을 할 수 있는 이 형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Q3> 부인사는 호국 도시 대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부인사 연구를 하며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A3> 그동안에는 현물이 있는 재조대장경이 부각이 많이 되었고 이 초조대장경의 마지막 봉안처에 대해서는 역시나 사명에 대한 문제 때문에 유적으로서의 큰 가치를 인정을 받지 못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잘 아시다시피 재조대장경은 현재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초조대장경의 개성부터 연결되는 부인사까지의 이 유적의 점적인 공간들은 유적으로서의 초조대장경, 유허지 내지는 초조대장경으로서 이렇게 이원화해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되고 그리고 초조대장경은 유적의 거점을 확보해 나가는 형태로 정비되고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앵커) 네, 교수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상편집 이상호, CG 최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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