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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심장' 초조대장경, 팔공산에 온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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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서은진
youtbc@tbc.co.kr
2024년 07월 25일

[앵커]
팔공산 부인사와 고려 초조대장경 비밀을 푸는 데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요.

그 중 하나가 '왜 팔공산으로 대장경판을 옮겼냐'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경판의 안전을 도모하고 고려 불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대장경판 이운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어서 서은진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고려 현종 시절인 1012년부터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초조대장경 인쇄본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설명하는 '설일체유부식신족론 16권 중 제4'로 1020년대에 인쇄한 것으로 추정되는 실물 원본입니다.

천년의 세월을 견딘 이 인쇄본에 송나라 대장경을 토대로 대장경을 만든 고려 목판 인쇄술의 정수가 담겼습니다.

당시 고려인들은 중국 대장경을 그대로 새기지 않고 다양한 대장경을 비교해 교정 편집해 말 그대로 '고려 대장경'을 완성했습니다.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
"우리 나름대로 소화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적어도 중국 것을 가지고 와서 판각을 한 이후에
교정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조대장경에 삽입된 '어제비장전'이란
불교 판화에서도 중국 대장경과 다른
정교하고 세련된 판각이 잘 나타납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총망라하는 대장경은
불교 국가였던 고려의 '심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75년에 걸쳐 대장경을 만든 뒤 수도 개경에서 팔공산 부인사로 옮기는 큰 결정이 내려집니다.

정확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나라 안팎으로 환란이 많았던 인종 시절 대각국사 의천의 적통 제자인 계응과 그
제자들이 팔공산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팔공산 부인사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큰 사찰로
대규모 경판을 소장할 수 있는 건물과 이를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기문 / 경북대 명예교수]
"(당시 부인사에서) 신라 때 많은 교학 연구의 전적이라든가 그것을 보관하거나 연구했던 전통이 있었다고 생각이 들고...발굴 조사 결과에도
건물이 통일신라까지 올라가는 특수 건물지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1232년 몽골군이 침입해 초조대장경을 불태우기 전까지 팔공산 부인사에서 1백 년 가까이 대장경 인쇄와 보수, 연구가 이뤄진 겁니다.

그 실물 증거가 발굴 조사를 통해 발견된 대형 건물지와 수조 등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고려의 심장을 품었던 팔공산 부인사의 실체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습니다.

TBC 서은진입니다. (영상취재 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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