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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복숭아 밭 덮인 부인사...갈 길 먼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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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남효주
hyoju3333@tbc.co.kr
2024년 07월 25일

[앵커]
대구 팔공산 부인사 옛터에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봉안했음을 입증하는 명문 기와가 발견됐다고 지난주 단독으로 전해드렸는데요.

부인사 터에 대한 조사 면적은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대부분 농경지여서 유적지 훼손도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갈 길 먼 발굴 조사 실태를 남효주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인사 옛터.

통일신라시대 창건돼 우리 역사상 최초 대장경인
고려 초조대장경을 품었던 위용은 1232년 몽골군 침입으로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1950년대 중건된 건물 몇몇이 초라하게 이 곳을 지키지만 대장경이 있던 부인사는 승려 2천여 명이 머무르며 '승시장'까지 열렸던 당대 최고 사찰이였습니다.

[CG-IN] 조선 후기 사찰 현황을 정리한
'범우고'에서는 부인사를 규모가 크다는 의미의 '대가람'으로 기록했고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역시 부인사를 보고 ‘참으로 거대한 사찰’ 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CG-OUT]

그렇다면 옛 부인사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CG-IN] 현재의 부인사와 절의 입구를 표시하는 옛 부인사 일주문 추정 위치와의 거리는 약 700m,

고려시대 어골무늬와 비스듬한 격자무늬 기와의 출토 지점을 기준으로 보면 옛 부인사 규모는 소쿠리 모양 산간 지형에 남~북 1km, 동~서 500미터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면적으로 따지면 22만여 제곱미터, 축구장 30개 크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CG-OUT]

[최태선/중앙승가대학교 교수]
"축대나 초석이나 고려시대의 기와편들이 분포하는 범위를 봤을 때 (일주)문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공간까지 유물들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곳이 부인사의 사역의 끝이 아닐까..."

[CG-IN] 하지만 1989년 시작돼 35년 동안 진행된 발굴 조사 면적은 1만 7천여 제곱미터, 전체의 10분의 1도 못 미칩니다. [CG-OUT]

부인사 터 대부분이 사유지이기 때문입니다.

사찰이 쪼그라들면서 민간에 땅이 넘어갔고 지금은 포도와 복숭아 밭이 뒤덮고 있습니다.

[종진 스님/ 부인사 주지]
"우리 사적의 3분의 2가 사유지입니다. 중요한 요소요소에 다 사유지가 겹쳐져있어서 사적으로 만드는 데도 굉장히 난제가 있고 발굴을 하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발굴 조사는커녕 사유지에 묻힌 각종 유물과 유구의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스탠딩]
“제가 서 있는 뒤편에는 대형 석조 수조와 계곡을 연결하는 40여 m 길이의 석조 수로가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유일한 형태의 이 수로가 위치한 곳 역시 개인 사유지여서, 발굴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거란의 침입에 '풍전등화'였던 고려를 구하려 불심을 모아 만든 초조대장경.
천 년 전 위대한 역사를 담은 부인사가 여전히 땅 속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TBC 남효주입니다. (영상취재 고대승 CG 최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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