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3주년 광복절입니다
일제 강점하 독립투사들도
많았지만 민족을 배반한
친일파들도 적잖았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안중근 의사에 의해
총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알려진 거물급
친일 인물 박중양이
있습니다.
그가 친일 행적 양병운 기자가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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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선교사 사택으로
지어진 동산의료원 선교 박물관,
건물 기초로 쓰인 이 돌들은
1906년 허물어진 대구읍성
성벽돌입니다.
당시 30대 초반의
대구군수였던 박중양이
정부의 불허방침에도
대구 상권 장악을 노린
일본 상인들의 요구로
성을 허물었습니다.
이명수/동산의료원 홍보실장
"선교사들이 박중양의 허락을
얻어서 돌들을 기초로 썼다"
이후에도 친일행각을
멈추지 않아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그는 1919년 일어난
3.1 운동 탄압에도
앞장섰습니다.
권성원/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장
"자제단 대표를 맡아 대구지역
3.1운동 진압 진두 지휘했다"
C.G)그는 안중근 의사에 의해
총살된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로 알려졌을만큼
일제의 신임이 두터웠고
그 또한 이토를 세계적
위인으로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해방후에도 그의
친일에 대한 단죄는 없었고
오히려 일제로부터 하사받은
오봉산 정상에는 그가 죽은 후 40년 가까이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S/U)하지만 광복50주년인
1995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철거 주장이 제기되자
박중양의 후손들이 1996년
밤에 몰래 비를 철거해 가버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최근
그의 땅으로 남아 있던
침산동 일대 8만여 제곱미터,
시가 36억원 상당의 토지를
국고로 환수했습니다.
TBC 양병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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