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목숨을 걸고
일본 군대에서 대규모
탈영사건을 벌였던 지역의
한 독립운동가가 60년이
지나서야 겨우 공적을
인정받게 됐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는
누명 때문에 번번히 심사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종웅 기자의 보돕니다.
일제의 수탈과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44년 1월.
84살의 권중혁 할아버지는
당시 24살의 나이로 대구
24부대에 학도특별지원병으로
입대하게 됩니다.
말은 지원병이지만
부모가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게 돼 결국
끌려간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뒤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무기고 습격
계획등을 세웠지만
감시가 심해 결국 탈영을
결심하게 됩니다.
[권중혁-대구시 대명동]
"죽을 각오로 나가서 게릴라전을
하던지..."
그해 8월 8일 6명이
함께 탈영했고 일본군은
이적 행위로 여겨 하루
4천여명의 군인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결국 23일 군위에서
체포된 뒤 징역 4년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권 할어버지는 그해 12월
일본 큐슈 육군형무소에
입감돼 다음해 10월까지
감옥에 갇혔습니다.
목숨을 건 탈영과
옥살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았지만
동료의 모함에 남로당
선전부장으로 조작돼
독립유공 심사때
번번히 탈락됐습니다.
[권중혁-대구시 대명동]
"일본 사람 미워한 것 밖에
없는데..완전히 조작된 것.."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생사를 건 탈영과
옥살이를 했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는
60년의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tbc이종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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