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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보다 많은 금' 허리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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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희 기자 (PCH@tbc.co.kr)
2025년 11월 28일 21: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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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주 APEC을 계기로 마련된 신라 금관 특별전이 큰 인기를 끌고 있죠.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또 하나의 특별한 유물이 금관처럼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금으로 만든 허리띠 6점으로, 제작에 사용된 금의 양은 금관을 능가한다고 합니다.

박철희 기자입니다.


[기자]
얇은 금판을 도려내 만든 꾸미개를 허리띠마냥 줄줄이 연결했습니다.

아래로는 갖가지 모양의 드리개를 길게 내렸습니다.

신라 황금문화의 대표 유물, 금허리띠입니다.

드리개에는 권력과 위세의 상징을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무력을 표현하는 칼과, 비취나 금으로 만든 곡옥과 약병, 영생과 다산을 뜻하는 물고기에다 철기 생산의 권위를 담은 숫돌도 있습니다.

전시에 선보인 금허리띠는 모두 6점,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 금관총과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에서 나와 경주와 중앙, 청주 박물관에 분산 소장됐던 것들로 국보와 보물이 각각 3점씩입니다.

4세기에서 6세기대 신라 마립간 시기 왕과 왕족의 전유물로, 가죽과 직물 재질은 썩고 허리띠 장식들이 남은 걸로 보이는데 대개는 금관과 함께 출토됐습니다.

[김현희 /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과장 “정치적인 권위나 위계 질서, 그 당시 사회의 어떤 현상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 중의 하나가 되겠습니다.” ]

금 순도는 대부분 80%대로 금관과 비슷하지만, 금관에 비해 장식이 다채롭고 금도 훨씬 더 많이 투입됐습니다.

[이한상 /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전체 체적도 물론 크지만 두께도 두껍기 때문에 금관에 비해서 금제 허리띠에 투여된 금의 무게, 금의 양이 훨씬 더 많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

생활용품을 허리에 달고 다닌 고대 북방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고구려에서 들어와 신라만의 양식으로 발전한 걸로 보입니다.

[함순섭 /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신라에서 가장 빠른 형식이 고구려에 있거든요. 고구려에서 아마 허리띠 착용법이라는 이런 것을 배워왔을 겁니다."]

피장자가 키 180센티미터 안팎 성인 남성으로 추정된 천마총 금허리띠가 136.8센티미터로 가장 길고 어린 왕자 무덤으로 보이는 금령총은 74센티미터에 불과합니다.

금령총의 경우 아이의 영혼을 달래듯 연필 모양의 노리개 장식을 단 게 특이합니다.

학계에서는 허리띠를 생활에서 착용했을 거라는 의견과 특별한 행사 때만 썼거나 장례용품일 수 있다는 의견이 갈리는 상황,

신라의 금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이지만 금관총 금허리띠는 1927년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보관하다 도난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경찰서장 집 앞에서 극적으로 발견되긴 했지만 드리개 장식 일부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국립경주박물관이 이번 특별전 기간을 내년 2월 22일까지 두 달 연장했습니다. 그만큼 신라의 금허리띠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난 셈입니다.
TBC 박철희입니다. (영상취재 김명수 CG 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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