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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만든 왜곡된 경주 이미지…‘문화 데이터 주권’ 확보 시급
손선우 기자
2025년 10월 20일 13: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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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사라지고 첨성대는 천문대로
데이터 부족이 원인...일본.중국 편향
APEC 계기로 '디지털 문화강국' 비전 제시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생성형 AI가 한국의 문화유산을 왜곡된 형태로 표현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일부 AI는 APEC 개최지를 ‘경주’가 아닌 ‘서울’로 안내하고, 석굴암과 첨성대는 원형이 훼손된 모습으로 생성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 편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합니다. 특히 한국 문화 관련 데이터의 양과 접근성이 일본·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AI가 동아시아 이미지를 일본·중국 중심으로 일반화하며 한국의 고유성을 희석시키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를 넘어 국가 문화 주권과 정체성에 직결된 사안으로 평가됩니다. APEC과 같은 국제행사에서 AI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는 세계 이용자들에게 곧 ‘공식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AI가 문화 콘텐츠의 주요 창구로 부상한 상황에서, 한국이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에 의존한다면 ‘디지털 문화 식민지화’라는 우려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최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성형 AI의 왜곡된 문화유산을 바로잡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김 의원은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와 함께 정부 차원의 개선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김 의원과 반크에 따르면 챗GPT, 미스트랄, 제미나이 등 주요 생성형 AI 모델에 경주의 문화유산을 주제로 질의한 결과, 상당한 오류가 발견됐습니다.

예를 들어 오는 27일부터 내달 1일까지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개최지를 묻는 질문에 일부 AI가 ‘서울’로 안내했고, 석굴암 이미지는 불상이 사라진 모습으로, 첨성대는 현대식 천문대처럼 왜곡돼 생성됐습니다. 경주 APEC의 상징인 ‘얼굴무늬 수막새’는 도깨비 형태로 표현됐으며, 경주의 풍경 이미지에는 일본식 건물과 벚꽃이 함께 등장했습니다.

김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AI가 학습할 수 있는 고증된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돼야 하지만, 현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반영한 문화유산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국제 표준에 맞게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의원이 지적한 왜곡 현상은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글로벌 AI 기술 생태계에서 한국이 ‘데이터 공급자’가 아닌 ‘데이터 소비자’ 위치에 머물러온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국내 문화유산 데이터는 국문 위주의 단편적 설명에 그쳐 글로벌 AI 모델이 학습하기에는 접근성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보유한 문화재 DB를 다국어·멀티모달 형태로 정비하고, 이를 국제 표준에 맞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단순한 이미지 제공을 넘어 문화재의 역사적 맥락·복원 기준·국제법적 지위까지 포함한 ‘설명 가능한 데이터 세트’를 구축해야 AI의 왜곡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생성형 AI 기업 대부분이 미국·유럽 자본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이 데이터를 선별하고 모델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우선순위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문화재청이나 외교부, 과기정통부가 협력해 ‘국가 AI 문화주권 전략’을 수립하고, 글로벌 AI 기업에 한국형 문화 데이터의 정규 학습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경주 APEC을 계기로 한국은 세계에 과거 천년의 역사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디지털 문화 강국으로서 정체성과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AI 시대의 문화 경쟁력은 더 이상 박물관 안 유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통해 세계인의 인식 속에 새겨지는 ‘디지털 문화 영토’를 누가 선점하느냐의 경쟁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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