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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탈 넘어 첫 발굴 '성산동 유물' 첫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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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박철희
PCH@tbc.co.kr
2024년 02월 04일

[앵커]
고령에 가야를 대표하는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면
성주에도 고분 3백여 기가 밀집한 성산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엉터리 발굴로 크게 훼손되기도 했는데, 최근 성주군이 자체 발굴한 성과를 전시회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박철희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5,6세기 고분 323기가 밀집한 성주 최대 성산동 고분군, 북쪽 사면에 성산동 53호분이 자리했습니다.

1920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의 발굴에서
복숭아씨 8개가 출토돼‘팔도분’이라고 불리는데
당시 놀라운 유물이 나왔습니다.

마치 상투를 튼 듯 위로 끌어모은 머리카락,
삼국시대 고분에서 이렇게 완전한 형태의 모발이
나온 건 전무후무합니다.

생체 정보를 분석해 당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타임캡슐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발굴 보고서가 없어 무덤 구조도 오리무중입니다.

같은 해 발굴한 48호분은 지름 40미터의 성산동 최대 고분으로 일제는 부곽의 유물을 끄집어내기 위해 주곽을 아예 무너뜨리는 약탈 수준 조사를 벌였습니다.

1918년 발굴한 57호와 61호분에서 머리뼈와 치아 같은 인골이 잇따라 출토됐지만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기록과 사진만 남았습니다.

[정인성 /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일제가) 일본인들의 기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조선에서도 인골 수집을 했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성주에서 출토된 인골을 일본으로 가져 나가서...”

1980년대 계명대 발굴 조사에 이어 2019년엔 이른바 전봇대고분으로 불리던 성산동 22호분이 열렸습니다.

성주군이 주도한 첫 조사로 최대 지름 18미터 규모의 타원형 봉분 아래 구덩식 돌덧널 양식으로 주곽과 부곽을 나란히 배치한 게 확인됐습니다.

도굴 피해에도 378점의 유물이 수습됐는데
그 중 2백여 점이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둥근 고리자루 큰 칼과 화살촉, 은으로 만든
화살통 장식 등 무기류와 함께 말띠드리개와 등자 같은 마구류도 볼 수 있습니다.

큰항아리와 굽다리 접시, 목긴항아리 같은
다양한 토기들 속에서도 원통모양 그릇 받침은
단연 돋보이는 유물입니다.

[최윤선 / 성주군 학예연구사]
“외면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리고 통형 기대(원통모양 그릇 받침) 역시 주곽에서 발견됐는데 전형적인 성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성주군은 일제가 파괴한 48호분을 재작년 재발굴해 조만간 성과를 공개하는 등 연구와
복원 정비 작업을 이어갈 방침입니다.

[박재관 / 성주군 성산동고분군전시관 팀장]
“(총 323기 중) 40여 기 정도만 복원돼 있고
나머지는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유지를 매입하고 그 매입 결과에 따라서 봉분을 복원해서 전체적인 성산동 고분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설 연휴 마지막날인 12일까지 계속됩니다. TBC 박철흽니다. (영상취재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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