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반세기 전 사라진 세종대왕 태실의 핵심 유물을 다시 찾았다는 소식, 지난 주 보도해드렸는데요
경남 사천에 있었던 세종 태실이 어떻게 국립청주박물관까지 가게 됐을까요?
세종 태실의 기구한 여정을
박철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경남 사천 큰태봉산에 세종 태실이 조성된 건
세종이 즉위한 1418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훼손함에 따라 1601년 태를 담은 태항아리와 태지석을 새로 봉안했고 1734년엔 비석도 새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1920,30년대 일제는 관리가 어렵다며
전국 조선왕조 태실 54위를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에 모았고 세종 태실 유물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태실에 묻힌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일제가 꺼내갔고 다른 석물은 훼손돼 방치된 겁니다.
태실 터는 민간에 넘기면서
세종의 태를 묻은 생명의 장소는
죽은 이의 공간으로 전락했습니다.
[박재관 성주군 학예연구사]
“여기(태실 터)가 길지라고 해서 불하받은 사람들이 거기에 묘를 많이 써요. 조선왕조가 망했다는 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겠나...”
1967년 신라오악학술조사단이 석물 일부를 수습하고 촬영해 세상에 알렸지만 핵심석물인 중앙태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1975년 경남도 기념물 지정 당시 이미 없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김상일 경남 사천시 학예연구사]
“1975년 이후에 만약 도난이 됐거나 없어졌으면 그 이후에 행정에서 추적하고 도난 문화재로 관리를 했을 건데 그런 게 전혀 이뤄지지 않은 걸로 봤을 때는 문화재 지정 이전의 어느 시기에 없어진 걸로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태실은 지난 해 국립청주박물관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석조 유물 특별전에 ‘태실 개석’ 즉 뚜껑돌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겁니다.
당초 전시에 빠져 있었지만 빼어난 조형미를
눈여겨본 담당 학예사가 막판에 포함시키면서
태실 전문가인 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장의 눈에 띈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 측은 태실 관련 유물인 줄 몰랐던 걸로 보입니다.
[허형욱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학예연구관]
“(기증 당시) 기증자 측에서는 유물의 명칭, 크기, 사진 정도의 기본 정보만을 주셨고요. 별도의 설명 자료는 따로 없었습니다. (저희들이) 소장품으로 등록하는 과정에서 논의해서 명칭을 태실 개석으로 정리해서 등록했습니다. ”
[CG]
삼성문화재단은 소장 경위와
세종 태실 인지 여부에 대한 서면 질의에
자신들이 답할 사항이 아니며
선대 회장과 유족의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과
기증 취지를 헤아려 달라고 밝혔습니다.
[스탠딩]
이번에 국립청주박물관에서 발견된 세종 태실은
조선 초기 왕의 태실 가운데 원형이 온전하게 남은 드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CG]
특히 태조와 정종 등 세종 이전 태실에 남아 있지 않은 지붕돌 보주가 완벽하게 보존됐고 지붕과 몸돌 모두 팔각형이던 조선 초기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CG]
몸돌은 달걀 같은 타원형으로, 받침돌은 사각형으로 바뀌는 후대 왕들의 태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입니다.
[심현용 한국태실연구소장(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장]
“(다음 왕인) 문종으로 가면서 양식이 확연히 다르게 변하죠. 그래서 (세종 태실의) 개첨석 및 중동석, 이 유물이 상당히 앞 유물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학술자료가 되죠."
6백 년 세월 온갖 풍파를 겪은 세종대왕 태실,
이젠 보존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TBC 박철흽니다.(영상취재 이상호 CG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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