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TBC는 6세기에 조성해 천5백 년째 쓰고 있는 저수지, 영천 청제를 조명하는 기획을 전해드렸는데요.
청제와 청제비를 국가 문화유산으로 승격하려는 시민운동이 본격화됐습니다.
박철희 기잡니다.
[기자]
2021년 기준 영천의 저수지는 모두 985곳,
[CG/T]
전국 시군구 가운데 단연 1위이고
광역 시도 13곳보다 많은,
영천은 그야말로 저수지의 도십니다.
[CG/T]
비가 귀한 가운데서도 살아남기 위한
오랜 기간 노력의 산물입니다.
그 중에서도 536년 만든 ‘원조 저수지’ 청제는 지금껏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습니다.
[영천시민]
“가뭄이 있어도 수로가, 저수지가 있으니까 물을
아무 때나 댈 수 있으니까...”
동아시아 유일하게 축조 연대가 명확하고 지금도 온전한 청제,
[CG 시작]
하지만 2005년 뒤늦게 시도 기념물이 됐을뿐 여전히 국가 문화유산이 아닙니다.
김제 벽골제와 울산 약사동 제방 유적이
국가 사적인 것과 대조적입니다. [CG 끝]
벽골제는 후대 사서인 삼국사기에 330년에 만들었다고 나오지만 정작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유적만 확인됐고 원형도 찾기 어렵습니다.
2012년 도로공사 도중 드러난 약사동 제방은
청제보다 늦은 7세기부터 100년 정도만 쓴 걸로 보이지만 발굴 직후 곧바로 사적이 됐습니다.
6세기와 8세기 역사를 앞뒤로 새긴 청제비도 마찬가집니다.
[CG 시작]
발견 이듬해 보물로 지정돼 반세기가 흘렀고
그 사이 발견된 포항 중성리와 냉수리,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모두 국보가 됐습니다.
시기가 더 늦은 단양 적성비와 진흥왕의 두 비석도 모두 국보지만 청제비는 6세기 전반 비석 중 홀로 국보가 되지 못했습니다. [CG 끝]
2백 년 간격의 명확한 고대 기록이 실물과 함께 남아 고대사 연구에 기준이 돼 온 만큼 국보가 되고도 남는다는 평갑니다.
[홍승우 / 경북대 역사교육과 교수]
“처음에 (보물이라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 국보가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청제비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자료들, 그런 자료들이 다 국보가 됐는데 청제비가 아직까지 국보가 안 됐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죠.”
청제에 대한 강연이 한창입니다.
강사는 문화재청 현직 문화재위원장,
국가 문화유산 심의기구의 수장인 셈인데
영천 시민들로 구성된 청제비 국보 승격과 청제 사적 지정 추진위원회의 초청으로 연단에 섰습니다.
[강봉원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
“재조명해서 (청제가) 가지고 있는 학술적인 가치, 그 다음에 비석뿐만 아니고 주변 경관, 이런 걸 전부 다 아우른다면 충분하게 (국보와 사적의) 가치도 있고 또 그렇게 (지정)하는 게 맞습니다.”
추진위원회는 올 상반기 국보와 사적 지정
절차에 들어가는 한편 천4백 년째 사용 중인 일본의 저수지 사야마이케의 사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발굴 목통 연대 측정 결과 청제보다 늦은 7세기에 만든 게 확인됐는데 2001년 사야마이케 박물관이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저수지 바로 앞에 건립돼 명소가 된 곳입니다.
[서길수 / 청제비 국보 승격과 청제 사적 지정 추진위원장]
“제방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동아시아의) 기술 전파,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가야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스탠딩]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생산하기 위해 피땀 흘려 청제를 만든 선조들 덕분에 천5백 년이 되도록 이곳 들녘은 여전히 풍요롭습니다. 이제 그들의 노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후손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TBC 박철흽니다." ( 영상취재 이상호 김도윤
CG 김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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