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00년 전 발견됐던 고대 영천의 대표적 유물이 최근 새롭게 조명받고 있습니다.
중국계 유물이라는 일제강점기 시각에서 벗어나
진한의 왕묘에서 나온 주체적인 문화유산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철희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장에 자리한 청동 유물들,
한껏 세운 갈기에 안장과 재갈을 장착한 말이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포효하듯 입을 벌린 호랑이는 자못 익살스런 모습입니다.
고리 끝엔 화려한 문양도 곁들였는데
초기 철기시대인 1세기 전반 진한 소국의
최고 지배층이 쓰던 허리띠 고리입니다.
유물이 발견된 곳은 깎아지른 듯한
금호강 절벽 위에 자리한 영천 어은리의 한 구릉,
일제강점기인 1918년 폭우로 무너진
흙더미에서 수습됐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나오지 않는 말 모양 띠고리는
국내 출토품 가운데 가장 시기가 빠르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말의 도시 영천의
대표 유물입니다.
어은리에서는 청동단추와 동물 모양 장식
120여 점과 함께, 청동거울이 무더기 발견됐는데 3점은 당시 국제교류를 증명하는 중국 한나라제 거울, 11점은 진한 최초의 독창적인 무늬를 가진 이른바 진한경입니다.
[이양수 / 국립청주박물관장]
“그런 기술을 봤을 때는 (11점은) 이 영천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되게 높고요. 지배자들이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자신만의 문양을 가지고 만들어서 배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CG]
하지만 1922년 어은리를 조사한 우메하라 스에지 등 총독부 고적조사위원들은 남조선의 한대(漢代) 유적, 그러니까 중국 한나라 문화가 확산된 결과로 규정했습니다.
[정인성 /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고조선 멸망 후) 중국이 군현을 설치하면서 한반도를 중국의 지배 하에 두면서 이런 문화가 확산됐다, 한국에 있는 지역의 사람들이 스스로 한 것은 없다고 하는 그야말로 조선 역사의 타율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이후 100년 넘게 어은리 유적에 대한 공식 조사가 없어 일제의 시각이 이어졌고,
[CG]
고대 영천은 골벌국과 아음부라는 나라와 왕의 이름이 삼국사기에 나오는데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2025년 시립박물관 건립을 앞두고 영천시가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연구자들은 이 시기 강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했던 만큼 이를 규명할 체계적인 발굴 조사와 유물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의 틀에 오랫동안 갖혔던
고대 영천이 시립박물관 건립을 계기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TBC 박철흽니다.(영상취재 이상호, CG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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