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맞아
대가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기획시리즈 순섭니다.
오늘은 지산동 고분군의 주요 유물을 통해
대가야 왕국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박철희 기잡니다.
[기자]
삼성 이병철 회장이 수많은 소장품 가운데
가장 아꼈다는 ‘고령 금관’,
이른바 현풍 도굴사건의 범인들이 1961년
고령에서 도굴해 이 회장에게 팔았다고 자백했는데
지산동 고분군에서 나온 게 확실해 보입니다.
(CG)1977년 지산동 45호분 발굴 조사 때 도굴꾼이 흘린 걸로 보이는 금제 장식을 수습했는데
고령 금관의 부속 금제품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금관과 함께 국보로 일괄 지정된 금귀걸이도
45호분 출토 유물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정동락 /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장]
“형태뿐만 아니라 크기가 동일해서 아마 같은 무덤에서 출토되었을 것이다.”
[CG]풀잎과 꽃을 닮은 대가야 금관,
나뭇가지 모양 신라 금관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대가야의 또다른 대표 유물,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역시 독특한 형탭니다.
[CG]오히려 일본 니혼마쓰야마 고분에서 나온
은 도금 동관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합니다.
금제 장신구와 금동 마구류 등 고대 왜의 수장층 무덤에서 나오는 대가야계 유물들은 대가야가 황금을 바탕으로 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박천수 / 경북대박물관장]
“대가야가 5세기 후반 한일 교역의 주도권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일정 부분 일본 열도에도 정치적인 영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지산동 44호분에서 나온 야광 국자도
대가야의 국제성을 입증합니다.
[CG/T]화려한 빛깔의 야광 조개
원산지는 일본 열도 남쪽의 오키나와,
고령에서 830km 떨어진 곳입니다.
백제와의 교류 흔적도 보입니다.
[CG]지산동 고분군 끝자락의 고아리 벽화 고분은 석축을 쌓은 무덤 구조와 내부 연꽃 그림이
백제 송산리 고분과 비슷합니다.
[CG]지산동 44호분에서 나온 은 장식 쇠창은
백제 무령왕릉 출토품을 닮았습니다.
현장음 “있다 있다” “방울이다”
2019년 지산동 고분군 작은 무덤에서
아이 뼈와 함께 출토된 지름 5cm 흙방울,
[CG]겉면에 산봉우리와 거북, 지도자를 형상화한 남자와 춤추는 여자, 그리고 하늘에서 자루가 내려오는 장면을 새겼습니다.
발굴팀은 6가야 시조들이 하늘이 내려준 알에서 나왔다는 삼국유사 내용을 담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를 놓고 건국신화가 실물로 처음 확인됐다는 평가와 단순 장난감이라는 의견이 맞섰지만 대가야 실체에 다가서는 의미있는 유물임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대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대가야 토기와 무덤 양식이 영호남 곳곳에서 확인되는 걸 볼 때 5,6세기 대가야는 백제에 버금가는 고대 왕국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천수 / 경북대박물관장]
"북쪽으로 (전북) 진안, 동쪽으로는 (전북) 순창, 남쪽으로는 (전남) 여수까지 아우르는 지역이 바로 대가야였기 때문에 내륙국가가 아니고 해양과 내륙을 연결하는 국가였다고 생각되고 그렇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CG] 대가야의 면모는 중국 사서인
남제서에서도 확인됩니다.
서기 479년 가라국왕 하지가 사신을 보내와 보국장군 본국왕의 벼슬을 내렸다는 대목입니다.
[김세기 / 대구한의대 명예교수]
“중국으로부터 품계를 받는 그게 국가로 인정받는, 오늘날로 치면 유엔 가입하는 거하고 똑같은..."
[스탠딩]
지산동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여전히 베일에 싸인 대가야 왕국의
실체가 어디까지 드러날 지 관심입니다.
TBC 박철흽니다. (영상취재 이상호 CG 김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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