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TBC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한 고령지역 문화유산을
집중 조명하고 과제를 짚어보는 연속 기획을 오늘부터 마련했습니다.
지산동 고분군은 국내 최대 고분군이지만 일제 강점기이후 수난과 무관심의 역사를 겪기도 했는데,
이제 세계 유산으로 발돋움하며 새로운 미래를 맞고 있습니다.
박철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앵커]
대구에서 고령 대가야 읍내로 넘어가는 옛 고개,
금산재에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과 마주합니다.
멀리 가야산이 뻗어 내린 고령의 진산 주산,
그 아래 펼쳐진 능선 위로 대가야 시대
크고 작은 봉토분 7백여 기가 늘어섰습니다.
국내 단일 고분군으로는 가장 큰 고령 지산동 고분군, 유네스코 실사위원들이 감탄사를 연발했을 정도로 7개 가야 고분군 가운데 경관도 으뜸입니다.
[김세기 / 대구한의대 명예교수(가야사 전문가)]
“그 (실사위원의) 부인이 (먼저 금산재에) 올라와서 보면서 와우 하고 감탄을 하고 조금 있다가 (실사위원인) 풀턴 교수도 와우 하는데..."
이젠 세계의 보물이 됐지만 일제 강점기 역사 왜곡의 표적이기도 했습니다.
(CG) 고대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려고 세키노 다다시 등
일본인 학자들이 1910년부터 1939년 사이 7차례 발굴 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보고서 한 권 없는 이른바 보물찾기로 전락했습니다.
[정인성 /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그들이 그리고 있던 임나일본부로 해석할 수 있는 자료가 고령에서 일절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에도 국가 차원 대대적 조사가 벌어진
신라나 백제와 달리 가야는 무관심의 영역이었고
오히려 곳곳에서 도굴이 진행됐습니다.
[김세기 / 대구한의대 명예교수(1977년 지산동 45호분 발굴 참여)]
“가야 건 내버려 둘 거냐, 경북대 윤용진 교수와 계명대 김종철 교수가 (고분의) 구조라도 파악해 보게 발굴을 해보자..그래서 (고령군에) 발굴비를 조금 한 달 간...”
[스탠딩]
"여기 있는 이 왕릉급 대형 고분들이 지산동 44호분과 45호분입니다. 1977년 지역대 연구팀이 어렵사리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문헌에만 나오던 순장의 실체가 국내 처음으로 확인된 겁니다.
(CG/T)
44호분은 32개 순장곽에 40여 명 그리고 45호분은 11개 순장곽에 13명을 순장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44호분은 여전히 국내 최대 순장 규몹니다.
당시 조사는 가야 고분과 대가야사 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고 이후 15차례 발굴 조사에서 구덩식 돌방과 돌덧널 무덤 등 4세기에서 6세기 사이 크고 작은 고분들이 확인됐습니다.
금동관과 금제 장신구, 토기, 마구류 등
대가야의 독특한 유물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낙동강 전경]
낙동강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누치,
대가야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물고깁니다.
지산동 곳곳 토기에서 누치 뼈들이 함께 출토됐는데 죽은 이에게 바치는 당대 최고의 먹거리였던 셈입니다.
지금도 고령 사람들은 누치를 즐겨 먹습니다.
[고령 대가야시장 상인]
“식당에서 많이 찾고(사러 오고) 가정집에는 조려 먹고 국 끓이고 매운탕 하고..."
천5백 년 전 대가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인류가 주목하는 세계유산으로 발돋움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맞고 있습니다.
TBC 박철흽니다.(영상취재 이상호 CG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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