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뜨거운 불과 씨름하는 곳이 있습니다.
쇠를 달구고 다듬는 대장간인데요.
철의 왕국 대가야의 수도 고령군에 위치한
전통 대장간을 박철희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섭씨 1500도 안팎의 불이 펄펄 끓는 화덕,
그 안에서 시뻘건 철판을 꺼낸 뒤 모루에 올려 두들기고 또 두들깁니다.
세 번의 단조작업을 거쳐 기역자 형태로 만들고
그라인더로 갈아 날을 세우면 낫 모양이 완성됩니다.
철판을 물에 담가 열처리 하는 담금질,
시간과 깊이를 조절하며 날 부분의 강도를 높입니다.
[이준희 / 고령대장간 대표]
“끝까지 (물에) 다 들어가면 깨져요.
여기까지만 했을 때 여기(날 부분)는 강도가 강하고
여기는 약하고, 그러니까 웬만한 충격이 가도
여기(날 부분)서 잡아주기 때문에 깨지지 않아요.”
대장장이의 얼굴은 어느새 땀범벅입니다.
화덕 옆 작업공간에 올려둔 온도계는 금새
40도를 넘더니 아예 옆면이 녹아 내립니다.
할아버지 때 시작해 3대째, 80년 넘게 가업을 잇는 이준희씨,
한때 고령 대가야 시장에만 대장간이 예닐곱개 있었지만 이젠 경북 서남부에 홀로 남았습니다.
예전처럼 풀무질로 불을 피우진 않지만 여전히 두드리고 담금질을 하며 농기구 30여 종류를 만들고 있습니다.
농민들뿐 아니라 심마니와 작두를 구하는 무속인들도 찾는 곳입니다.
대량생산 제품에 비해 거칠고 비싸지만
튼튼하고 고객 입맛대로 주문 제작이 가능해
1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경남 고성과 사천에서도 찾을 정도로 고객층이 탄탄합니다.
[단골 고객]
"(고객이 된지) 한 30년..."
"왜 이렇게 계속 여기 오시는 거예요?"
"내가 필요한 걸 어떻게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떻게(그대로) 만들어주고 그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여기가 좋죠."
편찮으신 선친을 도와 20년 전 평범한 직장인에서 대장장이로 변신했던 이씨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혼자 하는 일은 갈수록 힘들고 공장 제품 품질이
많이 나아져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걸 느낍니다.
[이준희 / 고령대장간 대표]
"공장 거 가져와 조금씩 팔지, 뭐하려고
불 앞에서 아버지 때부터 두드리고 있냐 하는 사람도 많아요...제가 언제까지 대장간을 할지 모르지만 하는 데까지는 열심히 하고 품질도 최상급으로 만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장날이면 나와 일을 돕는 이씨의 부인은
4대째 가업을 이을 거냐는 질문에 손사레를 칩니다.
[이은숙 / 부인]
"도시락 싸들고 말릴 거 같아요. (남편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진짜 아이고 아이고를 달고 사시거든요. 그래서 아들한테만큼이라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철의 왕국 대가야의 수도 고령에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온 전통 대장간,
망치 소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TBC 박철흽니다. (영상취재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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