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경주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보물단지
관련 뉴스를 최근 전해드렸는데요.
보물단지에서 영묘사 글을 새긴 기와도 함께 나와
현재 홍륜사지로 불리는 해당 지역이 영묘사지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 지역이 흥륜사지로 된 건 과거 일본인들 주장에서 비롯됐는데 이번에는 논란이 끝날지 관심입니다.
박철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기와 유물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얼굴무늬 수막새,
천4백 년 전 소박한 얼굴은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CG시작]
1934년 오사카 긴타로가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통해 처음 소개했는데
일본인 의사가 골동상에서 사들였고
출토지는 경주 사정동에 있는 흥륜사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신라 최초 사찰로 알려진 흥륜사의 위치를
사정동으로 처음 지목한 건
문화재 약탈범 모로가 히데오였습니다.
그 일대가 흥륜들로 불린다는 게
유일한 근거였습니다.
1934년 일본인 학자가 쓴
‘신라 고와의 연구’에서도 같은 주장이 반복됐고
해방 뒤에도 별 비판 없이 이어지다 1963년 사적 지정 때도 흥륜사지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CG끝)
[이현태 /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본인들이) 흥륜들에 있는 절터니까 당연히 흥륜사다 이렇게 추정해왔고 그런 것들이 (해방 이후에도) 큰 논란 없이 받아들여지면서...”
하지만 이를 입증할 유물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영묘사를 새긴 통일신라 기와만
잇따라 확인됐습니다.
[CG시작]
영묘사를 새긴 기와는 1976년 처음 발견됐고 이후 두 차례 발굴조사에서도 출토됐습니다.
지난 달 흥륜사지 서쪽 하수관 공사장에서
영묘사 추정 고려시대 암키와가 또 나와
영묘사지가 더 확실해졌습니다.
영 자는 아래 쪽만 남은 듯 하고
초서체 묘와 해서체 사 자가 뚜렷합니다.(CG끝)
[박정재 / 춘추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발굴기관)]
“(고문헌에) 0묘사라고 적혀 있는 것은 영묘사밖에 확인 안 되고 있고요. 이전에 영묘사지라는 명문 기와들이 출토됐기 때문에
(영묘사 기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CG]
영묘사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칠처가람 중 하나로 선덕여왕이 한겨울 영묘사 옥문지에 개구리떼가 우는 걸 통해 백제군 매복 사실을
알아냈다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흥륜사지는 북쪽으로 8백미터 떨어진
경주공고 자리가 유력합니다.
[CG시작]
흥륜사는 대왕흥륜사로도 불렸는데
2009년 이 지역 발굴 때 대왕과 흥 자를 새긴 기와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삼국유사는 흥륜사가 미추왕릉 서쪽, 서천 다리의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항공촬영 사진을 보면 경주공고 위치가 들어맞습니다.
또 영묘사는 남천 끝자락 사천미에 있다고 했는데 사적 흥륜사지가 남천의 끝자락입니다.
따라서 흥륜사지를 영묘사지로, 경주공고 자리를 흥륜사지로 보는 게 맞다는 평갑니다.[CG끝]
지난달 흥륜사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보물단지에서 영묘사 명문이 또 나올 수도 있습니다
.
[권택장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청동 공양구의 출토 사례가 전국에서 10여 곳 있는데요. (사찰 이름이) 적힌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것도 그런(명문) 부분이 충분히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주장에서 비롯된 오랜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지 관심이 뜨겁습니다.
TBC 박철흽니다. (영상취재 이상호 CG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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