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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광복 꿈꾸며...대구로 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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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박철희
PCH@tbc.co.kr
2023년 06월 12일

[앵커]
일제 무단통치 서슬이 퍼렇던 1910년대, 대구에서 항일의 기치를 드높인 광복회 청년들이 있습니다.

대구에서 만나 일제의 심장을 겨눈 이들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대구시가 광복회를 조명하는 건 처음인데
박철희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유사 이래 달구벌의 중심이었던 달성,

일제는 이곳에 일왕의 조상신을 모신다며
요배전을 짓고 신사까지 세웠습니다.

1915년 광복회가 출범한 건
달성공원 일제 신사 바로 앞이었습니다.

혹독한 무단통치를 자행하던 그들의 심장부에
당당히 항일과 독립을 선포한 겁니다.

곡물상으로 위장했던 광복회의 본부 상덕태상회도
경찰서 바로 앞이었습니다.

일제의 감시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동향을 감시한 격입니다.

상덕태상회를 담은 유일한 사진에 등장하는
결기 어린 광복회원들,

광복회 결성 당시 박상진 총사령이 31살이었고
전국 의병과 계몽운동을 대표해 모인
주요 인사 대부분도 30대 청년들이었습니다.

친일 부호를 처단한 자리에 광복회의 선고장을 남겼고 일제 세금수송 마차를 습격해 거액의 군자금을 확보했습니다.

대구부호 서우순을 습격한 대구 권총사건도
광복회원들의 거사였습니다.

지휘부가 잇따라 체포돼 박상진,김한종,채기중 등 7명은 사형 순국하거나 옥사했고 상당수는 무기형을
받아 조직이 와해됐지만 광복회의 공화주의와
항일 무장투쟁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의열투쟁으로
계승됐습니다.

대구 근대역사관이 마련한 광복회 특별전에서는
이들이 꿈꾼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와 같이 경찰서 코앞에 상덕태상회를 배치해 눈길을 끌었고, 당대 최고 서화가였던 긍석 김진만 선생 집안의 3대에 걸친 독립운동과 박상진 선생이 순국 직전 남긴 이른바 절명시도 소개합니다.

대구시가 광복회를 조명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구에서 항일활동을 했지만 대구 출생이 아니란
이유로 장진홍과 이육사, 박상진과 광복회를 외면해온 폐쇄적 역사관에 변화를 보인 셈입니다.

[신형석 / 대구시 문화예술진흥원 박물관운영본부장]
“오히려 대구 역사를 보면 열린 도시가 만들어낸 많은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통합돼 광복회가 만들어졌고 그분들이 광복을 위해 활동했던 중심무대가 바로 대구입니다.“

11월까지 이어질 이번 전시회에서 인재와 물산이 모이고 조국 광복의 의지가 집결했던 열린 도시, 대구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TBC 박철희입니다.(영상취재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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