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국민 고분’경주 천마총이
어제(6일)로 발굴 50년이 됐습니다.
국가가 주도한 첫 발굴사업으로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세기 전 발굴 현장으로 박철희 기자가 안내합니다.
[기자]
신라 대형고분이 밀집한 경주 대릉원,
1970년대 초반에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국내 최대 고분인 황남동 98호분 '황남대총' 옆으로 155호분, 그러니까 천마총이 보입니다.
(CG) 정부가 경주관광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
고분 발굴에 착수했고,국가 주도 첫 발굴 대상이 천마총이었습니다.
[1973년 국립영화제작소 영상]
“1973년 4월6일 아침 드디어 경주시내 황남동 155호 고분 발굴을 위한 문화공보부 발굴조사단의 첫 삽질이 시작됐습니다.“
지름 47미터, 높이 12.7미터 봉토를 조심스레 파들어가니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조성된 내부가 드러났습니다.
[CG 시작]
큰 나무곽 안에 시신이 든 목관을 넣고
나무곽 위로 돌무더기를 쌓은 뒤 흙을 덮은 겁니다.
이후 목곽이 썩어 돌이 내려앉으면 도굴이 불가능한 4세기에서 6세기 신라 마립간시대
무덤 양식입니다. [CG 끝]
금귀걸이를 시작으로 금제 허리띠와 금제 관모, 금동신발 등이 잇따라 출토됐고 6세기 것으로 보이는 신라최대 금관도 나왔습니다.
부장품 상자에서 뜻밖의 유물도 발견됐습니다.
말발굽의 흙이 튀지 않도록 하는 말다래 한쌍,
그 중 하나엔 하늘을 나는 말이 선명했습니다.
자작나무 껍질 위의 신라 그림 천마도, 썩지 않고 천 5백년을 버텨 화려하게 부활한 겁니다.
[1973년 국립영화제작소 영상]
“삼국시대 벽화 이외의 그림으로서는 처음 있는 유물로서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신라 회화의
높은 수준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8개월간 나온 유물은 국보 4점과 보물 6점 등
모두 만 천 5백여 점, 한국 고고학의 대사건이었습니다.
구획을 나눠 도면을 그리고 꼼꼼하게 기록해
고분 발굴의 표준을 세웠고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을 규명했습니다.
[지건길 /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당시 조사단 학예연구사)]
“(2년 전 백제) 무령왕릉을 그렇게 졸속 발굴을 해서 학계의 반성이 가미돼서 천마총에서는 이렇게 발굴해선 안된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발굴해야 한다..."
천마도와 금관 등 주요 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천마총은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한 채 관객을 맞고 있습니다.
[천마총 관람객]
"실제 그 쓰임새를 잘 모르고 그냥 천마도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 쓰임새까지 같이 알 수 있게 되어서..."
천마총 발굴 시작 50년을 맞아 당시 조사단원 5명이 참석하는 특별 좌담회가 열렸고
발굴 50주년 기념 행사가 연말까지 이어집니다.
(cg)다음달 발굴 50주년 비전선포식과
경주박물관 특별전, 미디어아트 행사에 이어
하반기 학술행사와 고분문화 축제가 열리는데
특별전에는 천마도가 9년 만에 선보입니다.
[김광열 / 문화재청 신라왕경유적 복원 추진단장]
"신라왕경 핵심 유적의 충실한 조사 발굴과
복원 정비 사업을 통해 (천마총 발굴의) 미래 100년 비전을 완성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클로징]
"천 5백 년 긴잠에서 깨어나 극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던 천마총과 그 유물들, 50년 만에 국민 속으로 다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TBC 박철희입니다." (영상취재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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