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1910년대 최대 항일 조직, 광복회를 기억하십니까?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대구 항일운동사의 자랑거리죠.
상덕태상회라는 곡물상이 광복회 본부였는데,
당초 약전골목으로 알려졌던 위치가 알고 보니 대구경찰서 바로 앞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제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었던 셈입니다.
박철희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리모델링이 한창인 대구중부경찰서,
일제강점기엔 식민통치의 거점 대구경찰서였습니다.
지금은 쇠락한 바로 앞 경상감영로는
대구읍성을 무너뜨린 일제가 대구 통치의 중심으로 삼은 곳이었습니다.
[스탠딩]
" 대구 중부경찰서가 위치한 이 거리는
1910년대 본정으로 불리던 곳입니다. 무단통치의 서슬이 퍼렇던 일제의 식민지배기관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CG]
당시 본정 지도를 보면 경찰서는 물론 경북도청과 헌병대에다 경제수탈기관들이 줄줄이 있던, 그야말로 일제의 심장붑니다.
1910년대 최대 항일조직이었던 광복회의 본부, 상덕태상회는 바로 여기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CG]
1921년 2월17일자 조선일보는 '광복회 본부는 경찰서 앞'이라는 제목 아래 총사령 박상진 선생이 대구경찰서 앞에 광복회 본부를 설치해 체포되기 전까지 활동했다고 기록했습니다.
1912년 설립된 상덕태상회는 곡물상으로 위장해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부호를 처단한 항일투쟁의 거점이었는데 구전을 통해 알려졌던 위치인 약전골목이 아닌 셈입니다.
[신형석 / 대구근대역사관장]
"박상진 선생의 대담함, 그 결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이 경찰의 동향을..."
그 담대함과 당당함은 1915년 달성공원 일제 신사 바로 앞에서 열린 광복회 결성식과 일제의 허를
찌른 세금마차 탈취 사건, 친일파 처단 현장에 광복회 선고장을 남긴 행위로 이어졌습니다.
국내외 100여 개 거점과 지부에다 김좌진을 중심으로 해외조직까지 결성하면서 민중의 항일
의식에 불을 지폈지만 결국 박상진,김한종 의사가 체포돼 1921년 대구형무소에서 사형 순국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복회가 내건 공화주의와 무장투쟁의 기치는 임시정부와 의열투쟁으로 계승됐습니다.
[신형석/ 대구근대역사관장]
"이것(광복회의 정신)이 1919년 3.1운동으로도 연결되고 또 임시정부에서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그런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구 근대역사관은 광복회 관련 고신문 자료를 정리하면서 상덕태상회 소재지를 대구경찰서 앞으로
구체화한데 이어 정확한 위치를 계속 찾고 있습니다.
또 박상진,우제룡,최준 등 독립운동가와 광복회 활동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6월에 열 계획입니다.
TBC 박철흽니다.(영상취재: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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