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민간인 3천5백여 명이 학살된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유해 발굴이 재개됐습니다.
2009년 발굴 작업이 중단된 지 14년 만인데요.
이번 발굴은 1차 발굴 당시 나온 흙더미에서
유해를 수습하는 것에 불과해 완전한 진실 규명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서은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1950년 6월에서 9월 사이
국민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등
3천 5백여 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희생된
경산 코발트 광산입니다.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의 현장에서
한국전쟁 당시에는 학살 장소로
고통의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2007년 첫 발굴 조사가 시작돼 유해 520여 구가 수습됐지만, 예산이 끊기면서 3년 만에
두꺼운 철문이 닫혔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 재발굴 개토식 구성]
"경산시 평산동 대원골과 코발트광산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원혼들께 삼가 아룁니다."
진실화해위 2기가 출범하면서 14년 만에 다시
발굴 조사가 재개됐습니다.
1차 조사 때 다 확인하지 못한 흙더미를
포대에 담아 갱도 옆에 쌓아 놓았는데
이를 밖으로 꺼내 인골과 유품을 찾는 겁니다.
흙 포대 3천여 개 가운데 절반가량을 조사할 계획으로 추가 유해 발굴이 기대됩니다.
[장정민 / 경산 코발트 광산 조사 실장]
"토사하고 인골이 섞여 있습니다.
그것을 분리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골을 수습해서 보관하는 작업을..."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유해 발굴이 재개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이번 조사는 1차 조사 당시 보관하던 흙 포대를
조사하는 데 그쳐, 새로운 발굴 조사라기보다는
수습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나정태 /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
"진실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이해합니다.
이념 갈등으로... 그렇지만 유해는 처리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정상적인 국가입니까?"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가운데 유해가 발굴되지 않은 희생자는 3천여 명,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의 이념 논쟁 속에 억울하게 숨진
민간인 희생자 진실 규명 작업은
여전히 더디기만 합니다.
TBC 서은진입니다.(영상취재; 안재훈)
■ 제보하기
▷ 전화 : 053-760-2000 / 010-9700-5656
▷ 이메일 : tbcjebo@tbc.co.kr
▷ 뉴스홈페이지 : www.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