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조선시대 문헌에만 기록돼 있던
대규모 가마터가 고령에서 발견됐습니다.
원형 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는데다
상당량의 유물들이 발굴돼
당시 도자기 생산체제와 특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낙성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고령 사전리 도요지 발굴 조사에서 드러난
대규모 가마터입니다.
조선 전기 1469년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 기록된 '하며리 자기소'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길이 31미터, 경상도 최대 규모로
아궁이와 초벌실, 연도부 등이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발견됐는데
분청사기와 백자 등 다양한 자기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왕실에 공납하는 '인수'라는 글이 새겨진 자기도 고령지역에서 최초로 출토돼 이곳에서 하품부터 상품 도자기까지 모두 생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흙을 아홉 번 체질하는
구사지법을 적용한 고급 도자기들도 나왔는데
가마터 폐기장에는 아직 수십만 점의 자기류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대우 /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조사원]
"포도문양 그리고 국화문양 이런 여러가지 다양한 문양들이 복합된 문양, 이런 식으로 시기를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문양들이 나왔기 때문에 이 가마가 1420년 정도부터 1450년까지 운영된 가마로 유물을 통해서 알 수 있고요."
가야산과 미숭산, 의봉산 등 산지에 둘러싸인 고령지역은 땔감과 도자기 원료인 점토가 풍부해
대가야시대부터 곳곳에 가마터가 존재했습니다.
조선 초 고령과 운수, 성산 등 5개 지역에
가마터 1백여 곳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전국에서 손꼽는 도자기 생산지였다고 전해집니다.
[배성혁 / 대동문화유산연구원 책임조사원]
"(조선 초기) 당시 경기도 광주, 전라도 남원의 제품보다 더 뛰어나서 왕실로부터 상을 받았다는 기록 문헌이 아주 풍부한 데가 고령입니다. 과거부터 고령에 있는 장인들이 도자기 생산에 있어서 아마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마터 동쪽 바로 옆에서는
1600년 초 쌓은 것으로 보이는
조산도 발견됐습니다.
조산은 당시 양반들이
풍수지리상 명당 자리를 완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언덕을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풍수지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령군은 '하며리 자기소'를 비롯한
지역의 가마터와 관련한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학술대회를 연 뒤
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TBC 김낙성입니다. (영상취재: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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