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바치는 진혼가

  • 박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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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2-23 00:40
**** 불꽃으로 가시다니요 ****


황정순

슬픔 가누지 못하고
이 밤 기어이 비가 내립니다.
차마 두고 가지 못한
혼절하는 내 따뜻한 핏덩이
한송이 국화로 남아 바라보는데
어쩌자고 꽃잎 다 떨구어 낼
비가 내립니다.
*
불꽃처럼 살라하였더니
불꽃으로 가시다니요
*
이른 아침밥 지어놓았더니
한 술 뜨지도 못하고
급히 빠트리고 간 서류 봉투
현관 앞 선반에 놓인 채인데요
*
졸업 꽃다발 속에 묻힐
당신의 젊음이
어머니 머리맡 액자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데요
*
우리가 사랑하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이라 하였던가요
웨딩드레스 속의 당신은
아직 흰눈처럼 순결합니다.
*
당신 보이지 않더니
*
뜨거운 철갑 속에 갇혀
애타게 날 불렀던가요
들려왔지만 꽁꽁 얼어 붙었던
내 두 다리를 용서해요
*
당신을 그리는 사람보다
지하 어둠 속에서 당신을 인도할
등불일 걸 그랬어요
아,
당신의 꺼지지 않을 목숨일 걸 그랬어요
그러하지 못한 날 용서해요
*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나는 오늘밤 안전해요.
*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워
아직 이른 봄비로 통곡해요.
아직은 당신을
이별의 강물로 떠나보내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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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