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초대형 산불이 동해안을 덮친 지난달 25일 밤, 영덕의 한 마을에서는 긴박한 구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마을 이장과 어촌계장, 그리고 외국인 선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주민 60여 명을 대피시킨 건데요.
이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습니다.
서은진 기자입니다.
[기자]
괴물 산불이 동해안쪽으로 거침없이 확산하던 지난달 25일 밤 7시40분쯤,
영덕 축산면 경정 3리에도 시뻘건 불길이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연기가 마을을 감쌌지만 집안에 있던 주민들은 일찍 잠들었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통신이 마비돼 재난 문자마저 불통이었습니다.
[김필경 / 경정3리 이장 "나와 보니까 진짜로 방안에 있을때랑 바깥이랑 천지 차이야, 연기가 엄청나더라고요.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이상한 낌새에 밖으로 나온 김필경 이장과 어촌계장,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적의 선원 수기안토 씨가 마을 주민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유명신 / 경정3리 어촌계장 "이장님은 (마을) 왼쪽으로, 외국인 근로자는 가운데로, 저는 오른쪽으로 일일이 가서 다 깨워서 모시고 나와서..."]
그야말로 목숨을 건 순간들이었습니다.
[현장음 "어머니!" "됐어, 됐어." "잠깐만, 잠깐만"]
[유명신 / 경정 3리 어촌계장 "시야가 5미터도 안 나왔어요. 냄새는 냄새대로 나지."]
[김필경 / 경정 3리 이장 "연기 더 밀려오면 죽을 수 있겠다. 질식해서 죽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하기를 1시간여, 주민 60여 명은 가까스로 방파제 쪽으로 대피했습니다.
도로 쪽이 불길에 막혀 방파제에 고립되기도 했지만 해경과 민간구조대가 결국 주민들을 무사히 구조했습니다.
특히 이곳에 8년째 살며 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적 수기안토 씨는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 7명을 업어서 대피시켰습니다.
[수기안토 / 인도네시아 국적 선원(경정 3리 거주) "깜짝 놀랐어요. 또 무서워서...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빨리 깨워서 밑에 (대피시켰습니다.)" ]
수기안토 씨를 비롯한 이들 3명은 이제 온 마을의 영웅입니다.
[김필경 / 경정 3리 이장 "생각해 보세요, 어촌계장이고 동장인데 우리 둘이가 도망가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게 동네가 그게 말이 되냐고. 어른들을 먼저 대피시켜야 우리가 가지."]
다행히 인명 피해는 막았지만 마을 주민들과 수기안토씨 모두 생계가 끊길 판입니다.
방파제와 해변에 보관하던 어망 대부분이 불에 타 제철 맞은 대게와 가자미를 잡는 건 아예 불가능하고 언제쯤 조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도 막막한 실정입니다.
TBC 서은진입니다. (영상취재 이상호 화면제공 울진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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