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신라 왕경지구인
월지에서 출토된 기와들과 흡사한
기와등이 대구 중동에서 발굴됐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천도가 거론됐던 대구를
다스리던 관아터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귀중한 유적은
다 파괴돼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TBC 대구 정병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대구시 중동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입니다.
지난 4월까지 이 곳에서
유적 발굴조사가 이뤄졌는데
그 때 현장사진에는
기와가 무더기로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주요 관아나
대형 사찰에서나 사용이 가능한
귀면기와와 치미, 막새기와가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경주 왕경지구 내
월지에서 출토된 기와를
그대로 빼다 박은 최고급 수준입니다.
건물 용마루에 올린 치미와
벽사의 의미로 잡귀를 막아주는
귀면기와, 연꽃무늬를 이중으로 새긴 수막새는 격이 높은 7세기 말 8작 지붕 건물에
주로 얹혔던 것입니다.
[김성구/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7세기 후반 정도 (삼국)통일 직후로 추정할 수 있고 치미나 귀면기와를 통해서 관아건물로 추정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윗부분은 남아있지 않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기초로 사용한
완전한 건물터까지 확인됐습니다.
신라 천년을 통틀어
단 한 번 천도를 고려했던
대구에서 이 정도 화려한 기와를 얹은
건물터가 확인된 것은
이 곳이 처음이자 유일합니다.
평생을 통일신라 때
대구를 다스린 수창군 관아터를 찾아 온
경북대 윤용진 명예교수는
출토된 기와 등을 볼 때
이 곳이 수창군 관아 건물터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윤용진/ 경북대 명예교수]
"한 두 개, 몇 점 나오는 그것만으로 뭐 알겠나 하겠지만 그 몇 점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중요해서 관아가 있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유적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36일의 짧은 현장 발굴조사를 끝으로
보존 조치 대신 아파트 건설공사에 들어가
완전히 파괴돼 사라졌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에 온 조사기관은
중요 유적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을
전문가 검토회의조차 열지 않았습니다.
지역에 관련 전문가가 많은데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서둘러 외지의 전문가 2명을 불러
자문을 들은 게 전부입니다.
[발굴기관 관계자 싱크]
"그 때 당시에는 시간 상으로 빠듯했고요. 유구량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자문만 받고 얼른 완료시키는 쪽으로 일단 설정했습니다."
기와의 제작시기나 건물의 용도 등을
알 수 있는 명문 등이 새겨져 있을 수 있는
깨진 기와가 바닥을 뒤덮었지만
수습한 것은 70여건이 전붑니다.
고고학계는 문화재발굴기관이
범죄행위나 다름 없는 행위를
했다며 공분하고 있습니다.
[정인성/ 영남대박물관장]
"정보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조사가 끝나 버리고 그래서 간단한 형식적인 자문위원회를 거쳐서 유적조사가 끝나고 유구가 파괴되고 이미 공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종 결정권자인 문화재청도
책임을 피할 수 ?습니다.
발굴기관이 시행사와 유착돼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라도
현장 감시와 조사보고서 등을
통해 이를 걸러낼 책임이 있지만,
대구 중동유적에서는 이런 역할은 고사하고
오히려 유적의 파괴를 허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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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정병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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