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아리랑’은 있는가?(제2편)-영천아리랑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TBC대구방송 뉴스 ’용천아리랑‘ 문제를 연구자와 영천시민과 전승자, 언론이 함께 해결해야 한다.
- 기미양
- 0
- 538
- 글주소 복사
- 2016-08-03 21:35
‘용천아리랑’은 있는가?(제2편)
지난 제1편에서는 ‘용천아리랑’의 존재를 제시하라고 했다. 그런데 두 연구자는 영천시 홈페이지에 ‘용천아리랑’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두 연구자의 “‘용천아리랑’에서 영천아리랑으로 변했다”라는 주장은 오류에 의한, 또는 사료비판의 잘못에 의한 확대해석이라고 본 다. 이런 오류를 전제로 한 영천아리랑 문제제기는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심각한 문제성을 이해 못해서인지 누구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다시 언급하지만 이 글은 영천아리랑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쓰는 글임을 이해하고 연구자, 공무원, 전승자, 지역 언론(TBC대구방송/대구매일) 모두 관심을 갖고 상호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제2편에서는 영남지역 연구자에게 똑같이 ‘용천아리랑’ 존재 제시를 요청하고자 한다. 김기현은 2006년 문화재청『아리랑 종합 전승실태조사보고서』<영천아리랑>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1) “현재 <영천아리랑>에 대한 지역자치단체나 사설단체의 제도적 전승책은 전무하다. 영천문화원이나 시청에서는 노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며 오직 몇몇 아리랑연구자의 소개나 향토아리랑 애호자들만이 <영천아리랑>이라 고집하고 있는 노래가 곧 <영천아리랑>이고 이 노래의 전승 실정이다. 현장 조사시 지역 주민들조차 노래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사실 <영천아리랑>은 레코드판으로써, 북한의 아리랑 노래가 김연갑에 의해 국내에 소개될 때 알려진 것인데, 그 음악성이나 사설의 내용이 경북의 영천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이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인지, 아니면 대중가요로 창작된 신아리랑인지 아직 그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여기 소개하는 사설과 다르게 초기 레코드 사설에서는 후렴구로 “아라린지 지랄인지 용천인지”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어 “지랄 용천한다”는 우리 속언의 희화화된 사설이 사용되고 있고 현전 <영천아리랑>사설이 꽤나 희화적인 내용인 것을 보면 레코드로 만들어진 창작가요 아리랑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의 사설에는 경북의 영천과 관련되는 지역적 연관성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 음악적 가락이나 장단조차 향토적 음악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영천아리랑>의 존재 자체에 회의적인 실정이다.“
이 정부 보고서의 영천아리랑에 대해서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인지, 아니면 대중가요로 창작된 신아리랑인지 아직 그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추정했다. 분명한 것은 평안도의 용천 지역의 아리랑의 존재를 인식하고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아리랑이 정확하게 제시되어 현 영천아리랑과 비교해야만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을 제시해야만 한다.
다음 글은 지난 4월 11일자 경북매일 김기현 인터뷰 기사 <⑨ `민요전승론` 학자와 만나다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 “영천아리랑을 영천 사람이 모른다. 영천아리랑은 애초에 북한의 용천아리랑이었다. 적어도 1922년의 자료에서 확인한 바는 그렇다. `용천`을 잘못해서 영천이라 적은 것이다.”
1)의 인용문과 다르게 ‘북한의 용천아리랑’이라고 명시화 했고,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이는 그동안 10년 사이에 북한의 자료를 통해서든 연구 결과를 통해서든 ‘용천아리랑’이 존재한다고 인식한 결과이다. 역시 “1922년의 자료에서 확인한 바” ‘용천아리랑’을 제시해야만 영천아리랑으로의 ‘잘못‘을 검증해낼 수 있다.
역시 1편에서의 두 연구자(조용호/강등학), 경북의 연구자(김기현)에게 요청하는 바이다. 다른 아리랑 연구자와 영천시 공무원과 아리랑전승자, 특히 신문방송 기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래서 영천아리랑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본란을 통해서 반드시 제시해 주기 바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1편을 이어서 첨부합니다.(계속)
기미양/(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
--------------------------------------------------------------------
http://www.yc.go.kr/ycMain/bbs/boardView.do?cidx=1034&mId=0201040000&bod_Idx=23894
영천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7990 번
‘용천아리랑’ 제시하라(제1편)
이 글은 영천아리랑 연구자와 영천시민과 영천아리랑 전승자 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최근의 용천아리라 논란을 제기하는 바이다.
‘용천’아리랑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아리랑이 ‘영천아리랑’으로 잘못 전해졌다고 했다. 바로 지난 6월 13일 TBC대구방송 뉴스 <출처불명 아리랑 \"우후죽순\'>이라는 느닷없는 문제 제기였다. 과연 ‘용천아리랑’은 존재하는가?
TBC대구방송 뉴스 멘트
“영천에서 영천아리랑축제를 열고 있는데 이 아리랑은 ‘영천아리랑’이 아니라 만주의 ‘용천 아리랑’이라는 게 일부 학계의 주장이다. 정확한 고증 없이 아리랑 축제에만 열을 올리는 지자체들과 지역민의 낮은 참여문제, 학계 일부에서 영천아리랑이 본래 만주 ‘용천의 아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용호/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박사] \"1930년 조선민요아리랑이라는 글이 총독부 기관지에 기고가 됐는데,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천인가\' 이런 구절이 나와요. 영천 아리랑의 원조인 거예요\".(TBC 방송 인터뷰, 영천 아리랑의 출처와 명칭 문제-취재부 박정 기자-http://www.tbc.co.kr/tbc_news/n14_newsview.html?p_no=160613027)
1) 조용호/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박사 인터뷰
\"1930년 조선민요아리랑이라는 글이 총독부 기관지에 기고가 됐는데,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천인가\' 이런 구절이 나와요. 영천아리랑의 원조인 거예요\".
TBC 방송 인터뷰, 영천 아리랑의 출처와 명칭 문제(취재부 박정 기자)
http://www.tbc.co.kr/tbc_news/n14_newsview.html?p_no=160613027
위의 뉴스 멘트 워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분명히 ‘용천아리랑’을 제시했다. 영천아리랑은 없다는 논조이다. 과연 ‘용천아리랑’은 있고, ‘영천아리랑’은 없는가?
2) 조용호는 2007년 2월 발행한 『아리랑의 비밀화원』(집문당, 2007, 2월. 73쪽)
“<문경새재 아리랑>이나 <영천 아리랑>이라는 것은 없다. 기록을 무시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날조하는 것일 뿐이다. <문경새재 아리랑>의 원래 이름은 <경기 아리랑>이며, <영천 아리랑>의 원래 이름은 <용천 아리랑>이다.”
이상에서 확인하듯이 조용호가 기록상 제일 먼저 ‘용천아리랑’을 명시화했다. 이로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 용천아리랑의 존재를 실재하는 것으로 명시화함으로써 마치 영천아리랑이 이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주장을 정당화 시켜주었다. 이는 다음의 강등학의 주장에서 확인된다.
3). 강등학의 2007년 8월, 한국민요학회, 제18차 하계전국학술대회 발표논문
16.5)와 16,6)은 <용천아리랑>(각주 62번),16.7)은 밀양아리랑으로 판단되며, 나머지는 모두 <본조아리랑>이거나, <본조아리랑>일 것으로 판단된다.(「1945년 이전시기 통속민요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가사의 주제양상」, p.14)
4) 강등학, 2007. 12월 한국민요학 제21집, 논문
“이 9.5)와 9.6)은 <용천아리랑>66), 9.7)은 <밀양아리랑>으로 판단되며, 나머지는 모두 <본조아리랑>이거나, <본조아리랑>일 것으로 판단된다.(「1945년 이전시기 통속민요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가사의 주제양상」, pp.44-45)
5) 조용호, 2010. 「아리랑의 원형연구」, 숭실대학박사논문, 각주164번)
“영천아리랑이라는 명칭도 만주의 용천이라는 지명이 영천으로 바뀐 것[金志淵, <井邑新泰仁아리랑>,「朝鮮民謠아리랑(二), 朝鮮民謠의 硏究(三)」,『朝鮮』,朝鮮總督府{,1930.7,76쪽 및 金志淵,<淳昌아리랑>,「朝鮮民謠아리랑(二),朝鮮民謠硏究(三)」,『朝鮮』,朝鮮總督府, 1930.7,78~79쪽 참조]기이기 때문에 <용천 아리랑>이 맞다.”(p.71)
6) 조용호의 사이트, 2016.7월, “<문경새재 아리랑>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일 뿐”
“결국 용천 아리랑이 영천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시대 흐름과 함께 제목도 바뀌고 노래 내용도 변하고, 스리라는 발음도 변하였다.
http://blog.naver.com/cyh1164/10160340361
http://blog.naver.com/cyh1164/10030376761
이상에서 살폈듯이 ‘용천아리랑’이 존재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1), 2), 5), 6)는 조용호, 3), 4)는 강등학의 주장이다. 조용호는 2007년부터 2016년 7월까지, 강등학은 2007년 2회에 걸쳐 주장했다. 이로부터 영천아리랑은 ‘용천아리랑’이 ‘바뀜‘으로 오해하게 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위의 두 인물이 ’용천아리랑‘의 텍스트를 제시하고 영천아리랑과의 대조를 통해서만이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거듭 밝히지만 이 글은 아리랑 연구자, 아리랑 전승자, 담당 공무원간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누구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용천아리랑’의 텍스트를 요구할 수 있다.(계속)
기미양/(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
지난 제1편에서는 ‘용천아리랑’의 존재를 제시하라고 했다. 그런데 두 연구자는 영천시 홈페이지에 ‘용천아리랑’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두 연구자의 “‘용천아리랑’에서 영천아리랑으로 변했다”라는 주장은 오류에 의한, 또는 사료비판의 잘못에 의한 확대해석이라고 본 다. 이런 오류를 전제로 한 영천아리랑 문제제기는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심각한 문제성을 이해 못해서인지 누구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다시 언급하지만 이 글은 영천아리랑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쓰는 글임을 이해하고 연구자, 공무원, 전승자, 지역 언론(TBC대구방송/대구매일) 모두 관심을 갖고 상호 소통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제2편에서는 영남지역 연구자에게 똑같이 ‘용천아리랑’ 존재 제시를 요청하고자 한다. 김기현은 2006년 문화재청『아리랑 종합 전승실태조사보고서』<영천아리랑>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1) “현재 <영천아리랑>에 대한 지역자치단체나 사설단체의 제도적 전승책은 전무하다. 영천문화원이나 시청에서는 노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며 오직 몇몇 아리랑연구자의 소개나 향토아리랑 애호자들만이 <영천아리랑>이라 고집하고 있는 노래가 곧 <영천아리랑>이고 이 노래의 전승 실정이다. 현장 조사시 지역 주민들조차 노래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사실 <영천아리랑>은 레코드판으로써, 북한의 아리랑 노래가 김연갑에 의해 국내에 소개될 때 알려진 것인데, 그 음악성이나 사설의 내용이 경북의 영천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이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인지, 아니면 대중가요로 창작된 신아리랑인지 아직 그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여기 소개하는 사설과 다르게 초기 레코드 사설에서는 후렴구로 “아라린지 지랄인지 용천인지”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어 “지랄 용천한다”는 우리 속언의 희화화된 사설이 사용되고 있고 현전 <영천아리랑>사설이 꽤나 희화적인 내용인 것을 보면 레코드로 만들어진 창작가요 아리랑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것의 사설에는 경북의 영천과 관련되는 지역적 연관성은 어디에도 없으며, 그 음악적 가락이나 장단조차 향토적 음악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영천아리랑>의 존재 자체에 회의적인 실정이다.“
이 정부 보고서의 영천아리랑에 대해서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인지, 아니면 대중가요로 창작된 신아리랑인지 아직 그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추정했다. 분명한 것은 평안도의 용천 지역의 아리랑의 존재를 인식하고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아리랑이 정확하게 제시되어 현 영천아리랑과 비교해야만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안도의 용천지방에서 부른 <아리랑>”을 제시해야만 한다.
다음 글은 지난 4월 11일자 경북매일 김기현 인터뷰 기사 <⑨ `민요전승론` 학자와 만나다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2) “영천아리랑을 영천 사람이 모른다. 영천아리랑은 애초에 북한의 용천아리랑이었다. 적어도 1922년의 자료에서 확인한 바는 그렇다. `용천`을 잘못해서 영천이라 적은 것이다.”
1)의 인용문과 다르게 ‘북한의 용천아리랑’이라고 명시화 했고, 단정적으로 기술했다. 이는 그동안 10년 사이에 북한의 자료를 통해서든 연구 결과를 통해서든 ‘용천아리랑’이 존재한다고 인식한 결과이다. 역시 “1922년의 자료에서 확인한 바” ‘용천아리랑’을 제시해야만 영천아리랑으로의 ‘잘못‘을 검증해낼 수 있다.
역시 1편에서의 두 연구자(조용호/강등학), 경북의 연구자(김기현)에게 요청하는 바이다. 다른 아리랑 연구자와 영천시 공무원과 아리랑전승자, 특히 신문방송 기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래서 영천아리랑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본란을 통해서 반드시 제시해 주기 바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1편을 이어서 첨부합니다.(계속)
기미양/(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
--------------------------------------------------------------------
http://www.yc.go.kr/ycMain/bbs/boardView.do?cidx=1034&mId=0201040000&bod_Idx=23894
영천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7990 번
‘용천아리랑’ 제시하라(제1편)
이 글은 영천아리랑 연구자와 영천시민과 영천아리랑 전승자 간의 소통을 목적으로 최근의 용천아리라 논란을 제기하는 바이다.
‘용천’아리랑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아리랑이 ‘영천아리랑’으로 잘못 전해졌다고 했다. 바로 지난 6월 13일 TBC대구방송 뉴스 <출처불명 아리랑 \"우후죽순\'>이라는 느닷없는 문제 제기였다. 과연 ‘용천아리랑’은 존재하는가?
TBC대구방송 뉴스 멘트
“영천에서 영천아리랑축제를 열고 있는데 이 아리랑은 ‘영천아리랑’이 아니라 만주의 ‘용천 아리랑’이라는 게 일부 학계의 주장이다. 정확한 고증 없이 아리랑 축제에만 열을 올리는 지자체들과 지역민의 낮은 참여문제, 학계 일부에서 영천아리랑이 본래 만주 ‘용천의 아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용호/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박사] \"1930년 조선민요아리랑이라는 글이 총독부 기관지에 기고가 됐는데,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천인가\' 이런 구절이 나와요. 영천 아리랑의 원조인 거예요\".(TBC 방송 인터뷰, 영천 아리랑의 출처와 명칭 문제-취재부 박정 기자-http://www.tbc.co.kr/tbc_news/n14_newsview.html?p_no=160613027)
1) 조용호/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박사 인터뷰
\"1930년 조선민요아리랑이라는 글이 총독부 기관지에 기고가 됐는데,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천인가\' 이런 구절이 나와요. 영천아리랑의 원조인 거예요\".
TBC 방송 인터뷰, 영천 아리랑의 출처와 명칭 문제(취재부 박정 기자)
http://www.tbc.co.kr/tbc_news/n14_newsview.html?p_no=160613027
위의 뉴스 멘트 워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분명히 ‘용천아리랑’을 제시했다. 영천아리랑은 없다는 논조이다. 과연 ‘용천아리랑’은 있고, ‘영천아리랑’은 없는가?
2) 조용호는 2007년 2월 발행한 『아리랑의 비밀화원』(집문당, 2007, 2월. 73쪽)
“<문경새재 아리랑>이나 <영천 아리랑>이라는 것은 없다. 기록을 무시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날조하는 것일 뿐이다. <문경새재 아리랑>의 원래 이름은 <경기 아리랑>이며, <영천 아리랑>의 원래 이름은 <용천 아리랑>이다.”
이상에서 확인하듯이 조용호가 기록상 제일 먼저 ‘용천아리랑’을 명시화했다. 이로부터 문제가 심각해졌다. 용천아리랑의 존재를 실재하는 것으로 명시화함으로써 마치 영천아리랑이 이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주장을 정당화 시켜주었다. 이는 다음의 강등학의 주장에서 확인된다.
3). 강등학의 2007년 8월, 한국민요학회, 제18차 하계전국학술대회 발표논문
16.5)와 16,6)은 <용천아리랑>(각주 62번),16.7)은 밀양아리랑으로 판단되며, 나머지는 모두 <본조아리랑>이거나, <본조아리랑>일 것으로 판단된다.(「1945년 이전시기 통속민요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가사의 주제양상」, p.14)
4) 강등학, 2007. 12월 한국민요학 제21집, 논문
“이 9.5)와 9.6)은 <용천아리랑>66), 9.7)은 <밀양아리랑>으로 판단되며, 나머지는 모두 <본조아리랑>이거나, <본조아리랑>일 것으로 판단된다.(「1945년 이전시기 통속민요 아리랑의 문화적 성격과 가사의 주제양상」, pp.44-45)
5) 조용호, 2010. 「아리랑의 원형연구」, 숭실대학박사논문, 각주164번)
“영천아리랑이라는 명칭도 만주의 용천이라는 지명이 영천으로 바뀐 것[金志淵, <井邑新泰仁아리랑>,「朝鮮民謠아리랑(二), 朝鮮民謠의 硏究(三)」,『朝鮮』,朝鮮總督府{,1930.7,76쪽 및 金志淵,<淳昌아리랑>,「朝鮮民謠아리랑(二),朝鮮民謠硏究(三)」,『朝鮮』,朝鮮總督府, 1930.7,78~79쪽 참조]기이기 때문에 <용천 아리랑>이 맞다.”(p.71)
6) 조용호의 사이트, 2016.7월, “<문경새재 아리랑>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일 뿐”
“결국 용천 아리랑이 영천 아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시대 흐름과 함께 제목도 바뀌고 노래 내용도 변하고, 스리라는 발음도 변하였다.
http://blog.naver.com/cyh1164/10160340361
http://blog.naver.com/cyh1164/10030376761
이상에서 살폈듯이 ‘용천아리랑’이 존재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1), 2), 5), 6)는 조용호, 3), 4)는 강등학의 주장이다. 조용호는 2007년부터 2016년 7월까지, 강등학은 2007년 2회에 걸쳐 주장했다. 이로부터 영천아리랑은 ‘용천아리랑’이 ‘바뀜‘으로 오해하게 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위의 두 인물이 ’용천아리랑‘의 텍스트를 제시하고 영천아리랑과의 대조를 통해서만이 오해를 해결할 수 있다.
거듭 밝히지만 이 글은 아리랑 연구자, 아리랑 전승자, 담당 공무원간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누구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용천아리랑’의 텍스트를 요구할 수 있다.(계속)
기미양/(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