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의 선물

  • 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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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08 18:12
재롱의 선물

할 일없는 나 같은 사람은 TV앞에서 하루를 보낼 때가 다반사이다.
손에는 항상 리모컨을 쥐고서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뉴스나, 드라마, 채널을 돌려가며 재미나는 프로를 찾게 된다.
그러나 뉴스를 보노라면 짜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이 땅의 엘리트라는 정치인들이 국익보다 사익을 위하여 이전투구하며, 치고 박고 부수고 하는 꼬락서니, 시정잡배보다 저질적이고, 국가재산을 두들겨 부수는 것을 보면 세금 내고픈 맘 땡전어치도 없어진다. 미운 년 겸상하듯 이들을 최고의 예우와 어마한 세비를 내 낡은 주머니 털어서 줘야하니 배가 꼬여 리모컨을 드라마로 돌린다.

드라마야, 작가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하여 흥미위주로 꾸미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상업주의라 해도 어린이도 시청하고 외국인도 시청하는데 국적 없는 언어가 도를 넘고 불륜의 줄거리가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한다.
남편이 오빠도 되고 아빠도 되며 가족 친인척 모든 호칭이 그렇고 족보 없는 신조어를 양산해내서 교육적이나 정서적으로 얻는 게 무엇인지 아무리 손가락을 곱아 계산해 봐도 헷갈리고 어지럽다.
신문방송의 기사는 모로 가도, 바로 간다고 사람들은 굳게 믿는다.
그러니 이런 방송을 보고 듣고 물 들린 청소년 들이 뭣을 배우고 흉내 내는지 작가는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한다.

TV 프로가 다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대구방송 TBC의 토요일 아침7시40분에 한기웅과 단비가 진행하는 ‘싱싱 고향별곡’ 이 프로는 유식한척, 잘난 척, 번지르르하게 포장도 안했고 분 바르고 연지곤지로 화장도 안했다. 평소 그대로 자연의 무대, 마음에 있는 말 그대로 꾸밈없는 참 연기다.
이, 프로는 늙은 우리들의 지난세월을 거울로 보는 것 같이 눈물겨운 애환이 담겨있고 살아가는 사람의 냄새가 묻어있고 석사 박사보다 더 깊은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었다. 공맹孔孟의 가르침보다 더 실질적인 교훈이 이 프로에 담겨있다.
여기에 출연하는 연기자? 들은 일제의 핍박, 2차 세계대전과 해방의 소용돌이 속에 의념의 갈등, 6.25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었고 헐벗은 몸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보릿고개를 넘어 산업사회로 진입한 생생한 기록들을 영상으로 돌리고 있었다.

2010년7월31일 아침7시40분에는 청송군 안덕면 신성2리 편이 방송되었다.
이 프로에 특히 내 귀를 번쩍 뚫리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봤다. 77세의 이○○ 할머니의 사연이다. 22살에 시집와서 시부모와 어린 시동생들과 남의 집 행랑방 한간에 신접살림을 차렸으나 굶기를 부잣집 밥 먹듯 하면서 손바닥만 한 상치 한포기 심을 채마밭 한 뙤기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이 살림살이를 시작했다한다.
그래도 시부모 정성으로 모시고 시동생들 성장시켜 분가시키고 자기도 7남매를 낳아 전부 대학 공부시켜 지금, 대처大處에서 검찰청 공무원. 교사, 은행원, 대기업 사원 등, 전부. 훌륭한 인재로 길렀고 큰 과수원도 장만해서 할머니 혼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 할머니 댁에는 냉장고가 3대가 있었다. 냉장고속에는 산나물 삶은 것, 다슬기 삶은 것 등, 봉지 봉지로 담아 냉장고마다 꽉차있었다. 도시에 있는 자식들이 오면 주려고 농사일 틈을 타서 다슬기 줍고 산나물 뜯어 장만 해 놓은 거라 한다.
어느 봉지에 ‘작다.’ 라고, 적힌 것이 있어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할머니는 글자를 몰라서 내, 나름대로 생각해서 표시 한 것이라 한다.
할머니의 큰 아들이 작년에 환갑이고 큰 딸은 금년에 환갑을 했다한다.
자녀들 환갑 때 무슨 선물을 받았느냐고 물으니 할머니 말씀이 “내가 왜? 선물을 받아! 내가 해줘야지” 하신다.
가난한 살림에 7남매 공부시켜 이렇게 성공했으면 당연이 자식들 생일에 큰상을 받고 선물 받을게 당연한데 도리어 선물을 해줬다하니 어리둥절할 수박에 없다.
할머니가 자식들 환갑에 선물을 해줘야하는 이유를 설명을 들으니 나 같은 맹추가 깜짝 놀랄 말씀을 하신다.
“내 일에 지치고 고생할 때 내 앞에서 재롱을 부려 나를 항상 즐겁게 해줘서 고생을 잊고 재미있게 살아온 게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니 내가 선물을 해줘야지 하신다.
어떤 선물을 해주셨냐고 물으니 할머니 말씀이 ‘고운 비단주머니에 새 돈을 넣어 주었다하신다’ 왜 물건을 주지 않고 돈을 넣어 주었냐? 물으니 “아이들 돌잔치 때 이뿐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면 아주 좋아했다 고, 하신다.
어느 박사가, 어느 철학자가, 어느 성직자가, 꾸민 없고 때 없는 이러한 진솔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이 할머니를 누가 못 배운 촌로라 말할 자격 있는 사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