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시민이고 싶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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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1-17 09:16
시각장애인도 시민이라면....
정부에서는 지역 주민의 문화 생활과 평생 교육을 위하여 각 지역에 도서관을 두고 있다.
포항시에도 어김없이 포항시민을 위한 시립 도서관이 존재하고 있다.
이 곳 포항 시립 도서관 역시 포항 시민을 위하여 설립된 곳이며, 포항 시민이라면 누구
나 이용할 수 있다.
나는 지난해에 경북점자도서관에서 이문열의 '삼국지' 전권이 제작되어 전국 시각장애인
특수학교를 비롯한 20 여곳에 비치 해 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포항에도 포항시립도서관
에 비치되어 시각장애를 가진 시민이 열람하고 대출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들었다. 그래
서 포항시립 도서관 근처를 지나가는 길에 그 생각이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점자도서관이 아닌 시립도서관에서 점자로 된 책을 한번 열람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수없이 점자책을
읽었고, 그리고 점자도서관을 이용해 왔다.
책 읽는 걸 좋아하여 특수학교 교내 도서관이나 점자도서관에서 책을 열람하거나 대출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주위의 비장애인들이 흔히 드나드는 시립 또는 구립 도서관 등의 '립'
자 도서관(공공도서관)을 이용한 적이 별로 많지 않다. 사실 이용을 하고 싶어도 시각장애인
이 이용할 수 있는 책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용을 할 수 가 없었다.
올록볼록 점자블럭이 내가 들어온 것을 반기는 듯 하여 기분이 좋았으며 도서관 문을 들
어서 대출실로 향했다.
함께 갔던 안내자와 서가를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으나 점자도서는 오간데 없고 비장애인
들 책만 있었다.
난 귀한 도서라 특별 관리되나 생각하고 직원에게로 가서 문의했다.
"저, 여기 점자 도서가 있다던데 좀 찾아주시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 혹은 '이리로 오세요'라고 기대했던 말과는 달리
"저희 도서관에는 점자책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어리둥절하고 '내가 뭘 잘 못 알았나' 하는 생각에 너무 민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
게 "여기 삼국지가 점자로 제작되어 비치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며 말을 흐렸
다.
"여기는 점자책은 없고요, 장애인복지관에 한번 가보세요. 거기서는 도서 배달까지 해 주
는 걸로 알고 있으니 신청만 하면 집에서 받아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한번 더 물어 보았을 때 '아, 예, 삼국지 말씀이십니까...'하며 잊고 있었던 걸 떠올려
주기를 바라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까지 없다고 일관하는 그 분을 보니 오히려 내가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점자도서관에서 해 주는 도서 배달 서비스를 장애인복지관에서 해 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친절히 본인이 가진 정보를 나눠 주는 성의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거 계속 물어보면 시각장애에 다른 장애까지 추가된 중복 장애인으로 취급 받지나 않을
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중복 장애인이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하고 대출실을 나왔다. 밖에 나와 생각을 정리 한 후 다시 대출실로
들어 가서 다시 한 번 문의 했다.
지난해에 시립도서관으로 점자 삼국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번 확인
해 주세요."
그러자 좀 자신 없는 목소리가 되어
"그럼 정리실에 알아봐야겠다" 며 전화를 들었다.
"작년에 점자책 들어온 거 있어요?"
"..."
"예, 삼국지...."
"..."
"지금 시각장애인분께서 대출하러 왔는데..."
"..."
"그럼 몇 권이라도 우선 빌려 드리면 안되겠어요?"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시고 하시는 말씀이 걸작.
"책이 있기는 있는데요,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대출을 하실 수가 없겠네요. 며칠 있다가
다시 오세요."
작년에 들어온 책이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니 참 어이가 없다.
"그럼 그 책이 총 몇 권입니까?"
"그건 제가 확인 못해 봤는데, 며칠 있다가 오시거나 아니면, 전화를 미리 하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1년 전에 들어온 책이 아직도 정리가 안 되어 있고, 대출실에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없다고만 답했던 상황이니 말이다.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갔었더라면 정말 민망스러웠을 것이다.
도서관 측에서도 내가 모르는 상태였고 그냥 바보로 만들어버렸으면 속 편했을 것이었겠
지.
참 답답했다.
난 아직도 포항 시민이 될 자격이 없단 말인가?
분명 시립 도서관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조건과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그러니깐 난
분명히 도서관을 이용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난 포항시민이고,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
으며 그리고 시민으로서 세금을 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립'자 도서관(공공도서관)에 가서 이용하는 비장애인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
었던가?
그러나 내가 묵자책을 볼 수 없고, 점자책이 없어 별로 가지 못한게 사실이다.
그런데 점자책이 제작되어 소장되어 있는데도 이용하지 못 한다는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것인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시립 도서관에 점자 삼국지가 있다는 정보만 갖고 다른 시각장애인이
갔었더라면 실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립도서관은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금지된 공간으로 제 확인하는 기회
가 되고 말았다.
점자도서가 정말 소중한 보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서가에 꽂아 두지도 않고 소장된
사실도 비밀에 부쳐있으니 말이다.
사실 대출실 직원분께는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시민으로써 당연히 시립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서비스 개선을
위해 내 의견을 낼 수 있기에 주제넘게 이렇게 이 글을 올리며 나도 시민이고 싶고 다른 시
각장애인들 또한 시민이 되기를 바래서이다.
우리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예산이 배정되었을 것이며, 그 예산은 다 국민의 혈세로 나온
것이다.
거기엔 내가 낸 돈도 있을 것이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낸 돈들도 포함되었을 것
이다.
그 세금을 물 속에 수장된 유물을 위해 수장료로 부담하기엔 좀 아까운 느낌이 든다. 시
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점자 블럭을 밟고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 역시 낭비 같다고' ...
금지된 공간에 왜 이런 걸 깔아 놓았는지 말이다.
시의 구절처럼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는 말인가?
비장애인 친구와 함께 와서 같이 책을 보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하는 날이 언제쯤 올 것
인가? 친구와 도서관 열람실에서 만날 약속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
국민 복지, 사회통합 말들은 잘 들 하고 있지만 정말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같이 만나고 같이 이용하고 같이 생활하게 하면 될 거 아니겠는가?
선 긋고 벽 쌓고 하는 거 이제는 하지 맙시다.
나도 함께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도 시민이라면....
글 : 포항시민 이재호
연락처 : 054-277-2999
정부에서는 지역 주민의 문화 생활과 평생 교육을 위하여 각 지역에 도서관을 두고 있다.
포항시에도 어김없이 포항시민을 위한 시립 도서관이 존재하고 있다.
이 곳 포항 시립 도서관 역시 포항 시민을 위하여 설립된 곳이며, 포항 시민이라면 누구
나 이용할 수 있다.
나는 지난해에 경북점자도서관에서 이문열의 '삼국지' 전권이 제작되어 전국 시각장애인
특수학교를 비롯한 20 여곳에 비치 해 두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포항에도 포항시립도서관
에 비치되어 시각장애를 가진 시민이 열람하고 대출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고 들었다. 그래
서 포항시립 도서관 근처를 지나가는 길에 그 생각이 나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점자도서관이 아닌 시립도서관에서 점자로 된 책을 한번 열람해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수없이 점자책을
읽었고, 그리고 점자도서관을 이용해 왔다.
책 읽는 걸 좋아하여 특수학교 교내 도서관이나 점자도서관에서 책을 열람하거나 대출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주위의 비장애인들이 흔히 드나드는 시립 또는 구립 도서관 등의 '립'
자 도서관(공공도서관)을 이용한 적이 별로 많지 않다. 사실 이용을 하고 싶어도 시각장애인
이 이용할 수 있는 책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용을 할 수 가 없었다.
올록볼록 점자블럭이 내가 들어온 것을 반기는 듯 하여 기분이 좋았으며 도서관 문을 들
어서 대출실로 향했다.
함께 갔던 안내자와 서가를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으나 점자도서는 오간데 없고 비장애인
들 책만 있었다.
난 귀한 도서라 특별 관리되나 생각하고 직원에게로 가서 문의했다.
"저, 여기 점자 도서가 있다던데 좀 찾아주시겠습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 혹은 '이리로 오세요'라고 기대했던 말과는 달리
"저희 도서관에는 점자책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어리둥절하고 '내가 뭘 잘 못 알았나' 하는 생각에 너무 민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
게 "여기 삼국지가 점자로 제작되어 비치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하며 말을 흐렸
다.
"여기는 점자책은 없고요, 장애인복지관에 한번 가보세요. 거기서는 도서 배달까지 해 주
는 걸로 알고 있으니 신청만 하면 집에서 받아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한번 더 물어 보았을 때 '아, 예, 삼국지 말씀이십니까...'하며 잊고 있었던 걸 떠올려
주기를 바라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까지 없다고 일관하는 그 분을 보니 오히려 내가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점자도서관에서 해 주는 도서 배달 서비스를 장애인복지관에서 해 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친절히 본인이 가진 정보를 나눠 주는 성의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거 계속 물어보면 시각장애에 다른 장애까지 추가된 중복 장애인으로 취급 받지나 않을
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중복 장애인이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하고 대출실을 나왔다. 밖에 나와 생각을 정리 한 후 다시 대출실로
들어 가서 다시 한 번 문의 했다.
지난해에 시립도서관으로 점자 삼국지를 보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번 확인
해 주세요."
그러자 좀 자신 없는 목소리가 되어
"그럼 정리실에 알아봐야겠다" 며 전화를 들었다.
"작년에 점자책 들어온 거 있어요?"
"..."
"예, 삼국지...."
"..."
"지금 시각장애인분께서 대출하러 왔는데..."
"..."
"그럼 몇 권이라도 우선 빌려 드리면 안되겠어요?"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치시고 하시는 말씀이 걸작.
"책이 있기는 있는데요,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대출을 하실 수가 없겠네요. 며칠 있다가
다시 오세요."
작년에 들어온 책이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니 참 어이가 없다.
"그럼 그 책이 총 몇 권입니까?"
"그건 제가 확인 못해 봤는데, 며칠 있다가 오시거나 아니면, 전화를 미리 하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내가 더 이상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1년 전에 들어온 책이 아직도 정리가 안 되어 있고, 대출실에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없다고만 답했던 상황이니 말이다.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갔었더라면 정말 민망스러웠을 것이다.
도서관 측에서도 내가 모르는 상태였고 그냥 바보로 만들어버렸으면 속 편했을 것이었겠
지.
참 답답했다.
난 아직도 포항 시민이 될 자격이 없단 말인가?
분명 시립 도서관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조건과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그러니깐 난
분명히 도서관을 이용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난 포항시민이고,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
으며 그리고 시민으로서 세금을 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립'자 도서관(공공도서관)에 가서 이용하는 비장애인들을 얼마나 부러워 했
었던가?
그러나 내가 묵자책을 볼 수 없고, 점자책이 없어 별로 가지 못한게 사실이다.
그런데 점자책이 제작되어 소장되어 있는데도 이용하지 못 한다는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것인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시립 도서관에 점자 삼국지가 있다는 정보만 갖고 다른 시각장애인이
갔었더라면 실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립도서관은 시각장애인에게 있어 금지된 공간으로 제 확인하는 기회
가 되고 말았다.
점자도서가 정말 소중한 보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서가에 꽂아 두지도 않고 소장된
사실도 비밀에 부쳐있으니 말이다.
사실 대출실 직원분께는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시민으로써 당연히 시립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서비스 개선을
위해 내 의견을 낼 수 있기에 주제넘게 이렇게 이 글을 올리며 나도 시민이고 싶고 다른 시
각장애인들 또한 시민이 되기를 바래서이다.
우리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예산이 배정되었을 것이며, 그 예산은 다 국민의 혈세로 나온
것이다.
거기엔 내가 낸 돈도 있을 것이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이 낸 돈들도 포함되었을 것
이다.
그 세금을 물 속에 수장된 유물을 위해 수장료로 부담하기엔 좀 아까운 느낌이 든다. 시
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해 놓은 점자 블럭을 밟고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 역시 낭비 같다고' ...
금지된 공간에 왜 이런 걸 깔아 놓았는지 말이다.
시의 구절처럼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는 말인가?
비장애인 친구와 함께 와서 같이 책을 보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하는 날이 언제쯤 올 것
인가? 친구와 도서관 열람실에서 만날 약속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
국민 복지, 사회통합 말들은 잘 들 하고 있지만 정말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같이 만나고 같이 이용하고 같이 생활하게 하면 될 거 아니겠는가?
선 긋고 벽 쌓고 하는 거 이제는 하지 맙시다.
나도 함께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도 시민이라면....
글 : 포항시민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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