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지역언론에 바란다.

  • 이경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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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10-30 04:15
대선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말로는 지역감정을 타파해야한다 어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C급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에 의존해서 표를 얻어보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고, 일부 보수언론과 지역언론들은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과연 지역 민영방송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까?

지난번 한나라당이 MBC를 비롯한 지상파 3사와 YTN에 이정연씨 관련보도의 요구사항을 공문으로 보내 큰 물의를 빚었던 적이 있었다. 사태가 커지자 한나라당은 서둘러 수습에 나섰고, 지금은 논쟁이 사그라든 상태다. 이렇게 이른바 신보도지침이라는 공방이 가열되었던 가운데, 우리 언론의 한 귀퉁이에서는 주목할만한 시상식이 있었다. 그것은 '철우언론법상'이라는 것으로 올해 설립된 한국언론법학회에서 처음으로 시상하는 상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상의 수상자인 박용상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밝히는 소견들이다. 그는 수상기념 세미나 주제발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문이나 기타 정기간행 물이 자신이 지키고 표방하는 경향에 충실한 정견을 가지고 공약을 행하는 특정후보 를 지지함으로써 여론 형성과 나아가 정부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뿐 아니라 헌법상 국가 의사형성의 장에서 언론에 당연히 요구되 는 기능이기도 하다."
"신문시장의 구도가 보수 우위이기 때문에 시기상조라는 주장은 자유 민주주의적 국가 의사결정체제를 무시하는 것이며, 진보적 언론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다수의 온라인매체가 대안언론으로서 등장해 상당한 영향력을 얻고 있는 현실에 비춰보더라도 설득력이 없다."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은 공정한 심판의 역할에 머물러 야 한다는 주장도 법적으로 하등 근거가 없는 것으로서 표현 및 언론의 자유의 기본적 이해와 상치되는 입장이다"
"특정후보의 지지가 허용된다면 편향보도를 하더라도 독자들이 이를 쉽게 판단할 수 있게 되고 후보자나 정당으로서도 투명하고 효과있는 정책적 대결을 촉진 하게 될 것이다."
"95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선거법 제87조가 `특정정당 및 후보자 에 대한 명시적인 지지ㆍ반대나 그 권유행위'에 국한될 뿐 설립목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항에 관해 자신의 정치적ㆍ정책적 주장을 개진하거나 그러한 정책에 동조 하는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한다는 일반적 논평까지 금지하고 있지 않음을 명백히 확인하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선거기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선거법 조항도 사기업에 대해 공정성 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하는 위헌법률이다."

그에 따르면 언론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유권자들의 성숙도로 보아 실질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민의 성숙도가 아니라 우리 언론의 성숙도이다.

사실 완벽한 객관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색채와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박처장의 논리는 타당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문제는 우리 언론의 성숙도이다. 우리 언론은 항상 객관주의를 표방하고 정치적 색채를 감추려 들었다. 게다가 요즘과 같은 경우 난무하는 설(說)들을 아무 여과없이 보도해서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까지 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설에서는 보수논조의 글을 실고, 정치면에선 불확실한 비방들을 전하고, 한편 책소개에서는 체 게바라 평전을 소개하는 일들을 해왔다는 것이다.

차라리 언론들이 드러내놓고 자신들의 정체성 이야기한다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자신들이 가장 균형적이고, 정확합네 하면서 혹세(惑世)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지역언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 만약 박처장의 말대로 지역 언론이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를 하고 나선다면 어떨까? 혹시 일부 언론처럼 교묘하게 유권자를 속이지는 않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현재 정치현실 속에서는 안될 노릇이다. 서두에 밝힌대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지역감정은 존재하고 또, 그것을 이용해 위정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만약 모든 지역 언론이 자신의 지역색에 맞는 후보들만을 조명한다면 그나마 좁은 이 땅이 다시 갈라질 것이다.

TBC가 기득권을 지키려 지역색을 이용한 위정자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과거 TK라 불리우며 무슨 지역감정의 메카인양 생각됐던 지역에 대한 오해를 풀었으면 한다. 민영이건 공영이건 운영주체는 중요하지 않다. 전파 자체가 공공의 것이지 않는가. 중앙 언론사보다 더욱 공공을 생각하는 지역 방송의 모습을 기대해본다.